봉천동 다세대주택 연수래
건축설계/신축
2022
위치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프로젝트기간 2021.08~2022.09
대지면적 271.00㎡
연면적 460.34㎡
용도 공동주택(다세대주택)
규모 지상5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타일, 알루미늄(메가판넬)
내부마감 마루, 종이벽지, 노출콘크리트마감
설계 윤경숙, 차주협, 김다은
시공 (주)이에코건설
사진 김용수
손세관 교수님은 '집의 시대'라는 책에서 아파트 정책의 실패 요인 중 하나는 발코니가 사라지게 방관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파트 정책이 실패했다?'라는 의견에 동의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이슈는 얽혀 있는 문제가 한 둘이 아니기에 여기서 다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아파트 정책은 여러 의미로 실패하는 중이다. 같은 집합주거로서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의 하위 시장에 가깝다. 사실 다세대주택의 시작은 500만호 주택 공급 정책과 맞물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했던 정권의 꼼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후 아파트는 주거공간이라는 본질에서 퇴색되어 화폐에 가깝게 변질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발코니의 원래 목적은 중요하지 않게 되버렸고 도시의 집합주택에서 발코니는 거의 멸종해버렸다. 그리고 이는 집합주택의 폐쇄성을 악화시키는 끝내기 홈런 같은 악수라고 평가했다.
설계업를 전전하며 되도록 아파트 설계판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똑같은 평면과 최대의 이익을 회수 하는데 최적화된 아파트 설계에 동참하는게 죄악처럼 느껴졌다. 건축사사무소를 대형화시킨 일등 공신이면서 어려운 시절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한 효자 종목이었겠지만 아무리 봐도 아파트 단지는 도시를 망치는 원흉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저것 주워듣고 찾아보면서 그 느낌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봉천동 다세대주택은 학교를 졸업하고 작업한 첫 집합주택이다. 디자인을 존중 받을 수 있는 여건이라고 판단하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겻눈질로만 봐왔던 여러 건축가들의 다세대, 다가구 주택 작업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주거 공간의 실체를 어느 정도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의뢰인은 비행기 설계에 참여했기에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고 오랜 동안 좋은 시공사를 찾아다닐 정도로 열의가 있었다.
우리는 설계의 시작과 함께 원칙을 정했다. 첫 번째, 아무리 작은 면적의 세대라도 모두 외부 발코니를 가질 것. 두 번째, 공용공간은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확보할 것.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기능을 담을 것. 지속 가능한 기능은 오염이 적은 외장재를 적용하고 단열선이 끊기지 않게 기밀성을 확보하여 결로를 차단하며 기계 환기 장치를 도입하여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고 열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향을 뜻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우리의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500㎡도 안되는 연면적에 12세대를 넣다보니 각 세대들은 원룸 수준의 규모를 가졌지만 의뢰인은 투룸의 형태를 고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은행 대출 때문이었다. 투룸으로 하지 않으면 대출 문제로 프로젝트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세대 별 발코니에 대해 여러 차례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두 개소만 간신히 유지하는데 그쳤다. 최대한 전용면적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와 유지 관리의 어려움 그리고 하자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공용부분의 면적도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가 정한 원칙 중 두 개가 무너졌지만 누굴 탓 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세대주택은 엄연히 임대 사업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다. 오히려 의뢰인 입장에서는 우리가 철부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애석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여전히 주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끊기지 않는 단열선은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의 콘크리트 공사 품질은 상상 이상으로 조악해서 구체 평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단열재와 구체의 틈을 없애는 것도 쉽지 않다. 열교차단재(점·면 열교 차단) 또한 고가의 제품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임대를 주는 건물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부분으로 돈을 쏟아 붓는 경우는 드물다. 괜찮은 건물은 결국 괜찮은 의뢰인의 의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연수래가 건축 작품이라고 얘기할 순 없다. 그럴싸한 이야기도 없고 동네의 흔한 다세대주택의 전형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하지만 제법 건강한 건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칠 정도로 밉게 생기지 않았고 다세대주택 시장(Market)에서 보기 드물게 패시브 기법들을 담으려고 했다. 건전한 의뢰인과 좋은 시공사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