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등굣길의 초등학생들과 차량이 뒤범벅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도로가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고 심지어 인도에까지 차가 올라온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다수가 집 앞 가까이 주차하기 위해 좁은 골목까지 겹겹이 차를 붙여 놓는다. 모두들 공영주차장을 원하지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보행권(the right to walk,步行權), 즉 도시를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권리가 사라졌다. 도시의 시민들에게 길이란 보행의 즐거움을 얻는 공간도 아니고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아닌,
오로지 차량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살벌한 전쟁터다.
아이들이 원없이 길에서 뛰어놀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제는 먼
추억이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는 자동차를 위한 도시에 살고 있다.
돈 없이 머물 곳을 찾기 어렵다. 커피숍, 노래방, 피시방, 찜질방…. 대부분의 공간은 금전 거래를 통해서만 즐길 수 있다. 걷다가 잠시 쉴 만한 공원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은 먼곳에 있다. 이웃과 함께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갈 장소가 없다. 우리는 시내 한복판의 공원에서 쉬어야
하고, 번화가에서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며, 집과 가까운 공간에서 이웃과 만나야 한다.
높은 아파트와 넓은 도로가 매일 같이 늘어난다. 그 이면에서는 도시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들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무참하게 짓눌린다.
어릴 적 친구와 걷던 골목길이, 아버지가 퇴근길에 들르던 오래된
술집들이,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마을 공터가
스러져 간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수십 년간 겹겹이 쌓여 있던
이야기들이 기록되지 못한 채로 사라지고 있다.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우리의 공간을 바라보자. 우리는 고단한
삶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주변 환경이 어떠한 모습인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순위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의 질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더 나은 도시를 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여럿이 함께 상상한다면
더욱 좋다. 많은 사람의 생각이 모인다면 도시는 바뀔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도시들을 이웃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구석구석
직접 걷고 살펴보며 고민하는 일은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공상
(空想)이 한데 모여 공상(共想)이 된다면, 그 생각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리라고 믿는다.
안양역 주변
도시공상 첫 번째 장소로 구도심의 중심인 안양역 주변과 수암천 일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90년대까지는 안양시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쇠퇴되어 그 색이 바랬다. 안양시의 역사만큼 오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이곳과 인접한 수암천을 같이 살펴보며 구 도심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인덕원역 주변
인덕원은 독특한 곳이다. ‘섬’ 형태에 가까운 구조다.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 내는 제약은 도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10차선이 넘는 도로에서 차량들이 질주하고, 지하철역 가까이에 밀도 높게 자리 잡은 술집들과 단독주택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한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동네 텃밭이 곳곳에 숨어 있어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