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열릴 아시아 게임 선수단의 숙소를 위해 1983년 국내 최초의 아파트 국제 공모전에 조성룡 건축사의 제안이 당선되어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준공 후 약 50년이 된 아파트 단지를 시원한 봄바람이 가득한 일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에서 내리면 우렁찬 응원의 함성이 들린다. 경기장을 등지고 서면 아파트 단지 조성 당시에 함께 계획된 아시아 공원이 있다. 강남 한 복판에 지하철에 내려서 이렇게 녹음이 울창한 숲 길을 통해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화창한 봄날 오후 공원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아주 크지 않지만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찬 올림픽로에 위치한 아시아 공원은 경기장의 응원 함성을 완충 시키고 아파트 주민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쉼터이다. 공원 끝에는 송파 문화원이 자리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가 특별한 경계 없이 들어섰다.
공원과 면한 아파트 단지에는 3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상가 단지가 있다. 현재는 노후되어 아주 활기차 보이지는 않지만 아파트 상가를 분리하지 않고 한 곳에 모은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기 계획 안에 없던 삼각형 중정 마당에 무질서하게 생긴 주차장은 자동차의 이동권이 사람의 보행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아파트 단지의 가장 큰 특징은 결혼식과 장례식과 같이 마당에서 행했던 전통적인 잔치를 아파트에서도 가능하게 넓은 마당을 둔 점이다. 이 마당에는 키 큰 나무 5~6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함께 김장도 담그고 잔치도 함께 하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동과 동 사이를 뚫어 만든 통행로이다. 이 길를 통해 단지 전체를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다. 세번째는 주차는 지하층과 지상 주차로 하되 보행 동선과의 간섭을 최소화해서 보행을 하는데 차로 인한 위험과 스트레스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상 주차장과 동 사이에는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보행로를 만들어 마치 숲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네번째 특징으로는 아파트 외관에 도장과 함께 정사각형 모양의 타일과 벽돌이 사용된 점이다. 각 동마다 과하지 않는 색상을 사용해 건물에 활기를 주었다. 또한 건물의 높이도 다 같지 않고 계단식으로 되어있어 높은 건물에 둘러 쌓여 답답하다는 생각이 덜하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의 외관이 둥근 벽으로 되어있어 조형성이 뛰어나다. 초기 엘리베이터는 집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를 대비하여 관을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다섯번째 특징은 지하주차장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 설치된 조형감이 훌륭한 오픈 공간이다.
1980년대에 계획 된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에는 건축사 조성룡 선생님의 사람과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파트 단지와 도시와의 관계이다. 단지의 동쪽과 남쪽으로는 울창한 조경과 담장만 있고 출입구라든가 단지 밖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단지 안의 다양한 보행로처럼 단지 밖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제 이 아파트도 재개발이 논의 되고 있다. 이 땅을 개발함에 있어 50년 간 이 자리에 있었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길 바란다.
by 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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