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답사 기간 : 2023.02.28 ~ 03.04 서울과 많이 닮은 듯 다른 도쿄를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작은 건축사사무소에서 전 팀원이(물론 겨우 4명이긴 하지만) 해외 답사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녹녹치 않지만 함께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며 나눈 시간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도쿄의 공동주택 답사이다.
공동주택은 마쿠하리 베이 타운, 코단 시노노메 집합주거 단지, 키바공원 미요시 주택, 힐사이드 테라스, 그리고 오모테산도 힐즈를 방문했다. 주요 답사지 사이사이 2020년에 재건축된 미야시타공원, 동경 포럼과 철로길 아래 이자카야, 호류지 박물관, 다이칸야마에 생긴 츠타야 티 사이트, 토요일 차 없는 긴자 거리, 그리고 21-21 Design Sight를 찾았다. 하루 2만 보 이상씩 걸으며 고생스러운 답사를 마치고 저녁마다 맛있는 먹거리와 시원한 생맥주로 피로를 달랬다.
우리는 나리타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롯폰기역 인근의 비즈니스호텔에 머물며 서울의 이태원과 비슷하게 외국인이 많은 롯폰기 지역의 음식점을 이용했다. 본격적인 건축 답사 후기에 앞서 이번 여행을 통해 도쿄에 대해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깨끗하다.
도시가 전반적으로 매우 깨끗하다.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 공기도 맑다. 건물의 연식과 상관없이 외벽과 유리창이 깨끗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물 청소나 유리창을 청소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거리에 쓰레기가 없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담배 피우는 장소는 지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끔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기는 하다. 불법 주차가 거의 없고 자전거 주차 시에도 사용료를 내는 시스템이어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자전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자동차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자전거도 등록제여서 일반 골목길에서 도로에 차나 자전거를 주차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길을 걸을 때 시야가 트이고 주변 상점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 도쿄의 거리는 깨끗한 인상을 준다.
둘째, 안전하다.
서울과 비슷하게 도쿄의 보행로도 그다지 넓지는 않다. 하지만 보행로를 무자비하게 달리는 오토바이는 없다. 자전거가 일상화 되어있는 일본에서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구분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자전거는 차로에서 달리고 인도에서 다니더라도 천천히 다녀서 보행 시 특별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자전거가 등록제다 보니 한국이나 다른 대도시처럼 아무 데나 세워진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상점의 입간판이나 세우는 광고판도 대지 경계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보행로가 넓지는 않지만 온전히 보행자의 공간이다. 이런 이유에 더해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한켜에 위치한 파출소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도쿄의 주요 번화가마다 유리창이 큰 파출소가 인도에 바로 접해 있고 경찰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관광객에서 위치를 안내하거나 술을 먹고 싸움이 난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경찰관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도 비교적 안전한 도시에 속하지만 도쿄가 주는 안전함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의 치안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우리가 매일 걷는 보행 환경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셋째, 디테일이 있다.
일본에서는 외부 마감재로 타일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코너에 사용하는 타일이나 다양한 종류의 타일이 있어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라도 타일이 색상, 크기, 패턴에 의해 개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보행로의 경우도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보도블록이 아닌 거리마다 독특한 마감재가 사용된다. 건물 커튼 월의 프레임도 각진 'ㅁ'자가 아닌 'ㅂ'자 형태여서 건물의 외관이 좀 더 샤프(sharp)해 보인다. 한국에서 설계를 진행하며 쓰고 싶은 재료나 구법이 구현되는 것에 어려움이 많은데 도쿄의 거리를 걷다 보면 금속으로 못 만드는 것이 없어 보인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고 싶으나 시공사가 항상 재료가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 아연도를 이용해 다양한 마감 효과를 낸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의 사용도 대중화되어 있고 유리 자동문의 경우에도 프레임이 매우 얇게 처리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에 기준에 적합한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기성품들의 디테일 수준이 건축가의 눈을 즐겁게 한다. 대부분의 화장실에는 영유아 거치대와 양변기 시트 소독 제품이 개별 칸막이마다 있다. 건축과 도시의 디테일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디테일이 있는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이기도 하다.
넷째, 노인과 아이들이 있는 도시 풍경이다.
도쿄에서 유난히 나이가 지긋한 노인과 만나는 기회가 많았다. 멋지게 차려 입고 거리를 걷는 노인부터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공사 현장에서 안전 안내를 하고 건물관리와 유리창 청소를 하거나, 공항에서 체크인을 할 때 짐을 옮겨주는 등 도시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의 고령화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진행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노인들의 사회참여가 많아졌지만 아직은 은퇴 후 사회 참여의 기회가 많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일본의 경우 노인의 사회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도 있다.
다음은 유아용 시트가 자전거의 앞뒤에 장착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엄마와 아이들이 빠르게 도시를 이동하는 모습이다. 출산율 0.7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한민국에서 4인 가족은 이제 보기 힘들다. 자전거를 타고 활기차게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 부모와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도시에 생기를 더한다.
살고 싶은 도시(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도시의 청결과 안전, 그 안에서 다양한 구성원이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도시를 인간 중심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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