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2 코단 시노노메 집합 주거 단지 (준공 : 2003 ~ 2005)
24시간 영업하는 마츠야 롯폰기점에서 일본식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코단 시노노메 집합주거 단지로 향했다. 다쓰미 역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별생각 없이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주거 단지로 향하는 보행교에 이른다.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개방된 풍경 너머 주거 단지가 보인다. 낭만적인 접근 방식이긴 한데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기분 좋게 걷기는 힘들겠다.
"당초 공장이 입지해 있던 16헥타르의 부지를 도심 주택지로 재생하는 대규모 토지 이용 전환 프로젝트로 일반적인 집합주택과 달리 도심 거주를 전제로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응하려는 계획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략) 지구 전체는 크게 운하 지구, 중앙지구, 임해 가로지구의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시노노메 코단은 중앙지구에 해당한다. 이 지구에서는 전체 개발 개념을 설정하기 위해서 색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즉 도시공단에서 위촉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로경관가구 기획회의를 결성하고 이 기획회의에서 지구 개발의 이념을 정리, 제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개발 사업을 문화적 코드로 전환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
[출처 : MA와 하우징 디자인/ 공동주택연구회 지음 P273]
특이하게도 이 기획회의의 좌장은 건축가나 도시설계 전문가가 아닌 작곡가인 사에구사 시케아키가, 방송 PD인 잔마 리에코가 실무 코디네이터로 이 지구의 개발 컨셉을 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다섯 가지 기획 개념을 제안했다.
새로운 시대의 양호한 환경
정주 감각에 의한 생활 변화
다양한 생활 양식에 대한 대응
24시간 생활
시대의 요구 창출
어제 방문한 마쿠하리 베이 타운이 직주근접 거주지를 만드는 목표를 가진 반면, 코단 시노 노매는 일과 거주가 혼합되어 있는 주거 방식을 전제한다.
'이 가로를 도심 거주를 향한 선도적 프로젝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형의 길을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일하고 잠자러 돌아오는 것만이 이루어지는 마을이 아니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마을 밖에서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등 도회적인 자극이 충만한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by 기획회의 좌장인 사에구사 시게아키
이 지구의 조성 방식은 각계 오피니언 리더로 구성된 가로경관가구 기획회의에서 새로운 도심 거주의 실현을 향한 컨셉을 제안하고 설계공모에 의해 선정된 건축가와 조경가로 구성된 시노노메 디자인 회의에서 지구 전체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마을 만들기 이념을 보여주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책정하여 설계를 진행했다.
단지의 전체 기본계획은 일본의 유명 건축사사무소 니켄세키에서 담당하여 토지이용계획, 지구 시설의 정의 각 주거동의 매스, 도시 선형, 녹지 및 공원 등을 계획하고 계획 호수, 규모 등을 설정했다. 시노노메의 중심을 가르는 S자형 보행자 도로는 단지 기본 계획에서 주어졌다. 기본적인 단지 계획이 결정된 이후 제안 공모 방식의 현상설계를 통해 각 주거 블록의 설계자를 선정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지명공모나 제안 공모를 통해 자격심사를 거쳐 건축사를 선정하는 사례가 있지만, 시노노메의 건축 설계자를 선정하던 당시만 해도 제안 공모는 낯선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수한 건축가들이 단지 설계를 하게 되었다.
디자인 어드바이저 : 야마모토 리켄
1블록 : 야마모토 리켄
2블록 : 도요 이토
3블록 : 구마 겐코
4블록 : 야마 설계공방
5블록 : ADH ·워크스테이션
6블록 : 모토구라 마코트 + 야마모토 / 호리 아키텍트
조경설계 : 이오사이드 계획 설계 사무소
존경하는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가 1블록 설계와 각 블록의 설계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공단과 함께 지속적인 디자인 회의를 통해 유동형 성격을 가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각 주거동을 설계했다. 디자인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루어졌으며 회의에서 각 블록의 설계안이 단계별로 작성되면 전체 부지 모델에 같은 재질, 같은 스케일의 모형을 만들어 와서 올려놓고 각 블록의 상호 관계나 경관 차원의 조정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체 디자인의 조화를 확보했다고 한다.
시노노메 단지는 기본적으로 기존 주거 단지 계획과 달리 거주와 일을 위한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다이내믹한 도심 거주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족형태를 위한 거주공간도 있지만 일과 생활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의 구성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층에는 S자형 보행로 도로를 따라 상가와 주거동의 로비와 주차장과 같은 블록별 공유 공간이 있고 2층에는 공유 데크가 있다. 총 14개 층 중에 저층부에는 소호 형태의 주거와 사무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어 업무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폭 3m 와 높이 3m의 모듈로 계획된 다양한 평면이 제공되어 입주자들은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코단 시노노메의 건폐율은 평균 65.9%, 용적률은 평균 419%이며 주거동은 14층이다. 우리나라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이 평균 20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현저히 높다. 우리나라 단지형 아파트의 개발은 낮은 건폐율에 높은 용적률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과 동 사이가 멀어 충분한 녹지나 부대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좋은 주거 단지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건폐율이 낮고 용적률이 높으면 결국 이웃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히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우리나라 일반 주거 단지의 건폐율이 법적으로 대지면적의 60% 이하로 제한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는 부적절한 법일 수 있다.
[참고 : MA와 하우징 디자인 / 공동주택연구회 지음]
우리는 1블록의 1층에 자리한 동네 빵집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마신 후 단지를 둘러보았다. S자형 보행도로는 직선의 보행로보다 안정감이 있고 시선의 변화를 주어 걷는 재미가 있었다. 1층에는 편의점, 유치원(YMCA), 학원, 관리사무소, 병원, 골프연습장, 어린이 용품점, 식료품점 등이 있고 보행도로에서 단지로 진입이 열려있는 구조를 가진다. 물론 실제 주거 단지 내부는 입주자만을 위한 공간으로 잠금장치가 되어있다. 운이 좋게 우리는 1블록, 2블록, 그리고 3블록의 공용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전체는 정확하게 'ㅁ'자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획일적인 방향으로 동일한 주거동이 반복된 것이 아니라 방향과 평면의 짜임새가 다 달라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건축물의 디테일 또한 우수하고 전체적으로 색감이 유사하여 통일감이 있다. 6동 내외부 도장 공사를 위해 어마 무시한 가시설을 하고 있어 입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우리나라 아파트 외벽도색 공사가 대부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아슬아슬하게 공사하는 것에 비해 일본의 가시설은 놀라울 정도로 꼼꼼했다. 돌출된 발코니와 외장재들이 다양해서 그럴 수도 있고 법규에 의해 규정되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단지를 둘러보았다.
우선 코단 시노노메 초입에 있는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1블록은 도요 이토가 설계한 2블록과 2층 공용부에서 연결되며 디자인 또한 유사하여 통일감 안에 차별성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블록보다 2블록의 공유 발코니가 입주민에 의해서 더 잘 활용되고 있었다. 정확하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2블록의 경우 1블록보다 공유 발코니가 더 많이 있어 주민들이 사용할 기회가 더 많고 가족 중심의 세대가 더 많아서 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1블록은 층마다 다른 줄무늬 색상으로 생기를 주었고 현관문은 유리 문으로 되어 있어 특별히 시트지를 바르거나 커튼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 복도에서 실내를 살짝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개인의 사적 공간이 밖으로 보이기를 꺼리는 경우는 유리 현관문을 선호하지 않겠지만 1블록의 많은 세대들이 크게 개의치 않고 사적 공간의 일부를 드러내며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피규어를 모으고 자전거를 즐기는 취미까지 전시해 놓은 경우도 있다. 야마모토 리켄이 국내에서 설계하여 2013년 준공된 LH 강남 3단지 공동주택에도 동일한 유리 현관문을 적용했다. 하지만 설계자의 의도는 전혀 존중되지 못했고 주민들의 불만이 접수되자 준공 후 대부분 일반적인 현관문으로 교체되었다.
1블록은 'ㄱ' 자로 꺾인 형태인데 서로 다른 방향의 동이 연결되는 부분에는 외부 연결 다리를 설치하여 건물 사이로 바람길을 만들어 주고 시각적으로도 건물이 너무 크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사실 이 연결 다리가 좀 무섭기는 하다. 하지만 이 다리를 지나며 감상할 수 있는 도시의 풍경과 도시에서 이 틈을 통해 단지 건너를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선택이다.
2블록의 1층에는 YMCA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단지 전체에 전해진다. 중정을 중심으로 교실이 배치되고 흙바닥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선생님들은 교실로 흙먼지가 들어올까 부지런히 빗질을 하고 있었는데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운동장 뿐만 아니라 보행자 중심의 단지 사잇길 들과 2층의 공유 공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2블록의 공유 데크는 마주 보는 2세대가 하나의 데크를 함께 사용하는데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옥외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일부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유 발코니를 쓰레기장처럼 쓰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2블록도 1블록과 마찬가지로 색상을 적극적으로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데 1블록이 줄무늬 색상을 사용한 것과 달리 솔리드 색상을 바닥과 천장 그리고 세대 현관문에 사용하였다. 특이한 전체 복도 천장에 설치된 금속 루버는 백색인데 루버 위 콘크리트 색상에 따라 복도의 분위기가 달라져 긴 중복도의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우리가 복도까지 들어간 3개의 블록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복도의 모습이었다.
구마 겐코가 설계한 3블록은 세련미가 넘친다. 그레이 톤의 메탈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적절한 간격의 수직 금속 난간은 발코니 내부의 모습을 살짝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S자형 보행 도로에서의 진입 또한 그랜드 한 계단을 통해 할 수 있고 두 개의 동 사이에는 층마다 다른 위치에 연결 다리를 주어 블록 안에서 다양한 이동 방식을 제안한다. 2층의 일부 세대는 공유 마당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사무실과 주거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세련된 건물의 2층 공용부의 우편함은 아날로그 감성의 열쇠로 장식되었다.
3블록의 두 동 사이는 결코 멀지 않다. 서로 마주 보며 긴 복도가 있고 복도의 끝에는 수직 계단이 있다. 물론 이 연결 다리가 얼마나 자주 이용될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동선의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은 하루를 좀 더 풍요롭게 한다.
3동은 유난히 건축가의 섬세함이 눈에 띈다. Pre-fabricated concrete로 만든 계단참, 햇빛은 가리지만 바람은 통하는 금속 루버 캐노피, 계단 중앙에 조경을 설치하고 나무가 있는 곳에 금속 루버와 안전대를 설치한 것 등등.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져 보는 즐거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4블록은 공유 데크에 원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이웃이나 친구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소 나누기 좋은 공간이다. 공유 데크를 바라보며 세대별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어 주민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가 많아진다. 일본에서는 발코니에 빨래를 자연 건조하는 것이 일상처럼 보인다. 4블록의 공유 데크는 이페 목재로 되어있어 튼튼하고 색상이 차분하다. 공유 데크에서 다시 넓은 계단을 올라 조경이 있는 공유 마당이 있다.
도쿄를 며칠간 돌아다니며 본 대부분의 주거용 건물에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외부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발코니가 만드는 풍경이 다채롭고 도시의 풍경이 삭막하지 않았던 거 같다. 국내 주거공간에는 대부분 발코니를 실내화하여 안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고 어딜 봐도 칙칙한 건물들만 특징 없이 서있는 모습이 도시를 잠식하고 있다. 또한 공동주택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동일시하는 개발 방식 때문에 우리의 도시는 건축적 다양성이 없고 평면도 획일화되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자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짐에도 주거와 업무시설은 한 공간에서 있을 수 없고 분리되어야 한다는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도시는 고칠 것이 참 많다. 코단 시노노메는 비그라운드 아키텍츠가 상상하고 있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실현해 놓은 주거 단지다. 중층 고밀, 저층부의 상업시설, 주거시설과 업무시설의 혼용 등의 방식은 고층 고밀, 주거 전용으로 되어있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필요한 변화이다. 주거와 업무공간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공간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도시가 미래 사회에 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단 시노노메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되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어떤지는 이번 방문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잘 정돈된 다양한 형태의 공유 공간과 S자형 보행 도로를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모면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경직된 우리의 주거공간도 이제 새로운 시도와 시대에 적합한 변화를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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