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수천 세대가 모여 사는 요즘의 아파트 단지에는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높다란 소나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부담스러운 형태의 파고라(pergola)*는 용도를 알 수 없고 울타리로 둘러싸인 잔디밭 앞에는 들어가선 안 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집값을 높이기 위한 관상용 조경은 그저 화려할 뿐, 어디에도 사람을 위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구 도심의 풍경은 다르다. 빨강색 ‘고무 다라이’에 흙을 채워 상추를 심고 고추를 기르는 모습을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조경 전문가의 작품처럼 세련되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이 녹아 있는 텃밭은 정겹고정성스럽다. 콘크리트 덩어리들 속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자연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골목 곳곳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이 지역의 텃밭은 고령 인구가 많은 곳에 집중되어 있다. 어쩌면 식물을 기르는 것은 기다림에 익숙한 나이 든 자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들이 일구어 낸 녹색 풍경은 자동차와 콘크리트 구조물에게 뛰어놀 곳을 빼앗긴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공동 주거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가꾸는 텃밭은 공동체 활동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에서는 2013년부터 학교 건물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여 지역 주민,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돌보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참여자의 커뮤니티 만족도가 높았는데, 연례 행사를 치르는 가운데 공동체 의식이 함양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인덕원역 주변의 도시 텃밭 또한 마을 커뮤니티 활동의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 02. 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