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원은 조선 시대에 내시들이 살던 곳이었다. 궁중을 출입하며 높은 관직을 역임한 이들이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덕화(德化)를 많이 베푸는 사람이 사는 곳'이란 의미로 인덕(仁德)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러다 과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상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한 원(院)을 설치하면서 인덕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원(院)은 임진왜란 이전에 없어졌다. 말을 갈아타던 곳이라 말 무덤 또는 말 분료를 뜻하는 마분(현 관양1동)이 인접해 있고 과거 초롱불을 밝힐 때 사용하던 기름이 나는 쉬나무가 유독 인덕원 인근
관악산 자락에 많이 식생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인덕원은 과천에서 진입하는 안양의 첫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인덕원 안에는 여전히 70년대에 처음 건설된 단독주택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주거시설이 상업시설과 공존하고 있다. 최근 재개발이 해제된 이후 소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학의천 건너 공장지대가 스마트밸리로 조성되며 이곳을 지나 출·퇴근 하는 직장인이 많이 생겼다. 인덕원이 원(院)이었을 때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70년대부터 하나 둘 생성되기 시작한 인덕원의 역사는 아직도 선명하게 도시의 일부로 남아있다. *이승언,<안양시 지명유래집> (1996)
<1960년대 인덕원과 평촌 주변: 도시화 되기 전의 학의천은 말 그대로 구비구비 흘렀다>
인덕원은 비정상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너비가 74m, 55m에 이르는 대로가 인덕원역 주변 블록의 절반 가량을 감싸고 있다. 이들 대로를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는 단지 두 개뿐이다. 다른 쪽 절반은 학의천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건너편에는 수많은 공장과 산업시설이 늘어서 있다. 근로자들이 빠져나간 저녁 이후나 휴일인 주말에는 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인덕원역 주변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비인간적인 규모의 커다란 시설들이 이토록 작은 블록을 에워싸고 있으니,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인덕원역 부근은 지하철이나 버스, 자가용을 이용해 다양한 방면으로 이동하기에 매우 편리한 지역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도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도보생활권’이 좁은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에 의존할 필요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이웃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자주 만나는 가운데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덕원역 주변의 거대 시설이 축소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다.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2022.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