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공공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박하기 짝이 없다. 건축물과 도로를 설치하고 남은 부산물 처리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도시 계획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공공 공간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나라 공공 공간의 질은 대체로 낮다. 접근하기 어려운 변두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유지 및 관리가 쉬운 형태로 디자인하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실용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안양역 주변을 생각하면 이러한 분석조차 사치다. 공간의 질을 따질 형편이 못 된다. 공간 자체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공공 공간은 커녕 임시로 설치된 시외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 발 디딜 틈 없는 공영 주차장과 수많은 차량들로 빼곡한 로터리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꼽아 보자면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는 도서관 한 곳,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공원, 조그만 놀이터 몇 곳이 전부다.
도시를 대표하는 역 주변에 공공 공간이 없다면 도시의 경쟁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 경쟁력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는 생동감이 넘치고 활력이 충만하다. 지방자치시대에 들어 많은 도시들이 한두 개의 테마를 두고 발전을 꾀하지만, 단순한 콘셉트의 도시 계획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공장이 떠난 공업 도시와 트렌드에 뒤처진 관광 도시가 겪는 어려움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지역 공동체는 다양성 있는 도시의 바탕을 이룬다. 개개인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교류되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이 만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도시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지점은 바로 공공 공간이다. 일상의 다양한 모습이 스며들어 풍성하게 꽃피는 공공 공간이야말로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는 변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도시 중심부가 공공 공간의 위치로 더욱 적절하다.
안양역 앞은 시민들의 것이어야 한다. 이 장소는 수암천과 더불어 구 도심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이 편안해지고 발걸음이 느긋해질 때, 안양의 구 도심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안양시에서는 수암천 공영 주차장을 복원하고 인근 삼각형 부지를 매입하여 지상에 공원, 지하에 주차장과 유수지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토지 배상 문제에 부딪혀 진척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들로 가득 찬 안양역 주변에 과감한 제안을 던진다.
첫째, 안양역 주변의 교통 체계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 안양1번가와 접한 만안로를 안양역 방향의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좁은 인도를 확장한다. 일방통행로는 안양역을 관통하는 대신 중앙사거리 방향으로 흐르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안양역 앞 교통 로터리를 시민에게 열려 있는 광장으로 조성한다. 이 광장은 시각적, 물리적으로 수암천 수변공원과 연결된다. 안양역 플랫폼에서 나와 광장을 나서면 인근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둘째, 새롭게 조성된 안양역 앞 광장에 지상과 지하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선큰(sunken) 마당을 마련한다. 안양역 지하상가는 안양1번가만큼이나 활성화되어 있다. 역 앞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못하고 지하상가를 통해 건너편으로 이동하게 된 데에는 지하상가와 안양1번가라는 두 상권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두 상권 모두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매력 있는 장소인 만큼, 공생을 위한 대안으로 마당을 제안하는 것이다. 지하상가는 날씨에 제악을 덜 받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자연 채광이 들어오지 않고 환기가 어려우며 시민들이 쉴 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 또한 비상 시 대피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들은 지상과 지하를 시원하게 연결하는 여유 있는 선큰 마당으로 해결할 수 있다.
셋째, (구) 현대코아를 복합 문화 시설로 탈바꿈한다. 20년이 넘도록 도시 미관을 훼손하며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건물을 시민들을 위해 새롭게 단장해야 한다.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 아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일명 ‘안양 뮤지엄 파크(Anyang Museum Park)이다. 지하 8층, 지상 12층의 건물은 지하에서 지하상가 및 선큰 마당과 연결되고, 1층에서는 안양역 앞 광장, 2층에서는 안양역 플랫폼과 만난다. 도서관, 전시관, 도시농장, 수직 정원, 전망대와 같은 다양한 시설이 있고 언제나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이 시설을 중심으로 안양은 공공예술의 도시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공공 공간이다. 변화된 안양역 부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진다. 사유재산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모두 함께 살기 위해서는 큰 변화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우리의 공상이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받아 현실화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20.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