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공원의 배경이 겨우 이렇다. 건물을 짓기엔 애매하다면, 녹지 비율을 맞춰야 된다면, 주변 지역주민이나 지역적 흐름과 상관없이 생뚱맞게 생기는 곳. 이런 공원에서 담아내는 콘텐츠는 지극히 촌스럽고 한정적이다. 벤치를 두고 버스킹 무대를 마련하고 이상한 하트 모양 조형물 가져다 놓는 정도. 당연히 큰 고민 없이 만들어진 곳이니, 특별히 고민하는 시간과 고생을 아끼고 그동안 진부하게 해온 콘텐츠를 집어넣는 것이 보통이다. 어떻게 보면 일의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할지.... 정말로 공원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는 이게 최선일까?
나의 기억에 남는 공원들은 안타깝게도 국내엔 없고 모두 해외에 있다. 일본의 우에노 공원, 미드타운 공원, 헝가리 시립공원이다. 이 공원들의 공통점은 공원 내부에 바로 제대로 된 문화시설이 존재한 다는 것이다. 우에노 공원에는 국립미술관, 보물관 등 일본의 문화사를 다루는 굵직한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헝가리 시립공원은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강연장이나 콘서트홀 등 주민의 삶의 질을 상승시키는 시설이 들어가 있다. 미드타운 공원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가장 트렌드가 빠른 동네 롯폰기에 위치하고 있어 디자인 트렌드를 다루는 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다.
헝가리 시립공원에 있는 the house of music hungary.
야외 마당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연습하고 있던 어린이, 내부에서 강연을 듣고있던 지긋한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일본 도쿄 롯본기 미드타운 공원에 있는 2121 디자인 사이트.
2121디자인 사이트 건물앞에 앉아 있으면 산책나온 행복한 강아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참 부러웠다. 저런 공원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공원에서 산책하다 편의점 가는 것처럼 미술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모두가 무료로 부담 없이 이용하는 공원 내에 문화시설이 있어서 그런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쉽고 간편한 과정으로 주어진다. 보통의 경우로 예를 든다면, 우리는 특정한 날을 잡는 수고를 통해 전시를 보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시를 보고 난 후도 문제이다. 우리는 전시의 여운 안에서 잠시 전시에 대해 떠들어대는 즐거움 없이 우선 머물 데를 찾아 주변 카페를 검색한다. 문화의 공간이 오히려 문화에 깊게 젖을 순간을 앗아간다.
근현대사에서 “문화시설” 중 “문화”가 내포하는 의미는 특정 집단의 소유나 창의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경험하고 떠들어 대어 만든 결과물이다. 가장 근본적으로 구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문화시설의 행태는 점차 본인들을 신성시화하여 담을 올리고 고립되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문화의 근본적 성격은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의 공간적 성격과 닮아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공원과 문화시설이 함께 모여 있는 곳도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것들이 주로 국립 시설이거나 그마저도 차를 타고 조금 들어가야 하는 정도라 주민들의 일상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보는 것들은 앞 문단에서 설명한 그저 그런 공원들과 날 잡고 떠나는 문화기행이다. 그냥 동네에 작은 공원이라도 좋고, 으리으리한 미술관이 아니라 주민들이 유화를 배우거나 작은 뜨개방이 들어가는 시설이어도 좋다. 함께 모여 있으면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꽃다발처럼, 우리의 일상에 이런 꽃들이 함께 있는 다발 같은 공원을 산책하다 갈 수 있었으면 하는 그냥 작은 동네주민1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