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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4월 10일
In 도시공상
1986년에 열릴 아시아 게임 선수단의 숙소를 위해 1983년 국내 최초의 아파트 국제 공모전에 조성룡 건축사의 제안이 당선되어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준공 후 약 50년이 된 아파트 단지를 시원한 봄바람이 가득한 일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에서 내리면 우렁찬 응원의 함성이 들린다. 경기장을 등지고 서면 아파트 단지 조성 당시에 함께 계획된 아시아 공원이 있다. 강남 한 복판에 지하철에 내려서 이렇게 녹음이 울창한 숲 길을 통해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화창한 봄날 오후 공원에는 가족, 친구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아주 크지 않지만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찬 올림픽로에 위치한 아시아 공원은 경기장의 응원 함성을 완충 시키고 아파트 주민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쉼터이다. 공원 끝에는 송파 문화원이 자리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가 특별한 경계 없이 들어섰다. 공원과 면한 아파트 단지에는 3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상가 단지가 있다. 현재는 노후되어 아주 활기차 보이지는 않지만 아파트 상가를 분리하지 않고 한 곳에 모은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기 계획 안에 없던 삼각형 중정 마당에 무질서하게 생긴 주차장은 자동차의 이동권이 사람의 보행권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아파트 단지의 가장 큰 특징은 결혼식과 장례식과 같이 마당에서 행했던 전통적인 잔치를 아파트에서도 가능하게 넓은 마당을 둔 점이다. 이 마당에는 키 큰 나무 5~6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함께 김장도 담그고 잔치도 함께 하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동과 동 사이를 뚫어 만든 통행로이다. 이 길를 통해 단지 전체를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다. 세번째는 주차는 지하층과 지상 주차로 하되 보행 동선과의 간섭을 최소화해서 보행을 하는데 차로 인한 위험과 스트레스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지상 주차장과 동 사이에는 조경이 잘 되어 있는 보행로를 만들어 마치 숲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네번째 특징으로는 아파트 외관에 도장과 함께 정사각형 모양의 타일과 벽돌이 사용된 점이다. 각 동마다 과하지 않는 색상을 사용해 건물에 활기를 주었다. 또한 건물의 높이도 다 같지 않고 계단식으로 되어있어 높은 건물에 둘러 쌓여 답답하다는 생각이 덜하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의 외관이 둥근 벽으로 되어있어 조형성이 뛰어나다. 초기 엘리베이터는 집에서 초상을 치르는 경우를 대비하여 관을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다섯번째 특징은 지하주차장의 채광과 환기를 위해 설치된 조형감이 훌륭한 오픈 공간이다. 1980년대에 계획 된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에는 건축사 조성룡 선생님의 사람과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여기저기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파트 단지와 도시와의 관계이다. 단지의 동쪽과 남쪽으로는 울창한 조경과 담장만 있고 출입구라든가 단지 밖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단지 안의 다양한 보행로처럼 단지 밖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제 이 아파트도 재개발이 논의 되고 있다. 이 땅을 개발함에 있어 50년 간 이 자리에 있었던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길 바란다. by KS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건축답사]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Asian Games Village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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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17일
In 도시공상
힐사이드 테라스 F, G, H동 A~E동 도로 건너편에 하얀색 외괸의 세련된 건물들이 있는데 이곳이 1992년에 준공된 힐사이드 테라스 F,G,H동이다. 1977냔 E동 이후 아넥스 A, B동과 힐사이드 플라자가 지어졌지만 힐사이드 테라스 시리즈의 건축물은 15년이라는 공백 후에 준공되었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형태는 유사하지만 마감재의 차이가 눈에 띈다. F와 G동은 건물 규모가 이전 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도로에서의 진입은 A~E동에서 많이 사용한 계단보다는 보행로와 같은 레벨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도로면에 비해 배면의 경사가 낮아 배면 쪽으로 주차장과 주거 출입구가 있다. F동의 상부 주거 공간은 난간과 SET BACK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 마당에서 바라본 F동 갤러리 카페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특별한 외부 행사가 없었지만 이 중정에서 프리마켓이나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도시에 여기저기 틈이 있는 다이칸야마의 모습이다. 츠타야 티 사이트 힐사이드 테라스 G동 옆으로 2011년 츠타야 티 사이트가 들어왔다. 일본 전역에 퍼져있는 츠타야 티 사이트는 책, DVD, 음반 등을 판매 및 대여하는 곳에서 확장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라는 모토로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업공간이다. 다이칸야마를 방문하면서 처음에는 힐사이드 테라스보다는 츠타야 티 사이트를 간다는 생각에 설레었는데 실제 와보니 힐사이드 테라스의 건축적 완성도가 너무 높아 츠타야 티 사이트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피곤했던 탓도 있을 것 같다. 힐사이드 테라스 F동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니 약간의 피로가 풀렸다. 그래서 다시 공간을 둘러보니 다양한 종류의 책과 그 공간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1층에는 서점이 2층에는 공유 서재와 일부 어린이 서점이 있다. 건축 코너를 보니 건축 관련 서적뿐만 아니라 도시 재생과 공공공간에 관련된 도서가 눈에 많이 띄었다. 힐사이드 웨스트 (1998년 준공) 답사를 다녀와 자료를 정리하면서 힐사이드 테라스 외에 힐사이드 테라스가 있는 걸 알았다. F,G,H동이 준공되고도 여러 해가 지나 건설된 힐사이드 웨스트는 힐사이드 테라스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다. 총 3개 동의 건물이 있는데 그중 C동이 힐사이드 테라스의 건축가인 마키 후미히코의 사무소이다.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8] 힐사이드 테라스 F, G, H동과 츠타야 티 사이트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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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17일
In 도시공상
힐사이드 테라스 C, D, E동 도로에 접한 C와 D동의 1층에는 다양한 상업시설이 있고 매우 개방적이다. 특히 C동은 1층에서는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진입구가 3곳이 있으며 가운데 중정이 있어 더욱 개방적이다. D동 배면에 있는 E동의 경우 업무시설이 주용도여서 출입할 수 없었다. C, D, E동 사이에는 신사가 있는 공간이 있어 오래되고 멋진 나무들이 있다. 힐사이드 테라스 C동 (1973년 준공) 힐사이드 플라자에서 바라본 C동의 모습이다. 아사쿠사가 저택과 면한 쪽으로는 선큰(Sunken) 공간이 있다. 다리를 건너듯 C동의 두 건물 사이를 통과하여 중정으로 진입할 수 있다. 전면도로에서 C동의 중정은 낮은 계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화이트와 오렌지색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패턴을 가진 바닥 마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같은 건물에 상업공간, 업무공간, 주거공간이 있지만 서로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동선이 있다. 또한 층고도 조금씩 달라 입체적이고 다양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중정에서 바라본 1층 상가는 대부분 유리면으로 개방적이다. 인테리어 가구점, 음식점, 소품점, 원단 가게 등 다양한 가게가 있고 2층에는 디자인 사무실이 유리창을 통해 보인다. 2층과 3층의 주거공간의 프라이버시는 잘 보호되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었다. 건축가는 solid와 void의 물성을 잘 사용하여 공간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만들어준다. 전면에서는 solid 하게 보이던 입면이 난간 측면을 얇은 금속으로 처리해 주출입구 쪽으로는 훨씬 개방적인 모습이다. 바닥 마감재의 변화로 공간의 변화를 알려준다. 힐사이드 테라스 D동 (1977년 준공) C동과 달리 D동에는 실내 마당 같은 공간이 있다. 건물 중앙의 지하 공간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연이나 전시에 적합해 보이는 공간으로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비어 있었다. D동은 'L'자 형태로 매우 입체적인 볼륨감을 가지고 있고 타일 마감의 건물이다. C동과 마찬가지로 1층에서는 3개의 통로로 건물에 진입할 수 있고 상부 사무실과 주거 공간은 독립된 출입구가 있다. D동의 1층에는 카페, 디저트 가게, 그리고 그릇 가게가 있고 넓은 공용 공간이 있다. 실내 홀이지만 마치 골목길처럼 보인다. 그릇 가게에서는 요리 수업도 진행한다. 건물 전면의 지하에는 세련된 미용실이 있다. 힐사이드 테라스 건물이 전체적으로 입체감이 풍부한데 특히 D동은 건물 1층에 다양한 높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이지만 다양한 공간감이 느껴지고 실내지만 외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겠지만 노약자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Barrier Free 관련 법으로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건물을 설계할 수도 지을 수도 없다. 물론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권리 존중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법의 방향이 너무나 원칙적이어서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힐사이드 테라스 E동 (1977년 준공) 사무실과 주거 공간이 있는 E동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층에는 건축사사무소도 있다. 마당에서 바라본 건물은 꽤 차분한 모습인데 배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테라스로 전혀 다른 공간감을 가진다. 1992년에 준공된 F, G, H동에 비해 60, 70년대에 준공된 A~E동은 좀 더 아기자기하고 입체적인 공간감을 가진다. 건물의 비례, 재료, 시공 상태 등은 지금 기준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관리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힐사이드 테라스의 주요 설계 개념은 다이칸야마 지역의 건축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골목 사이사이 생겨나는 상가들도 힐사이드와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공간을 조성했다. 훌륭한 건축가 그리고 좋은 의도를 가진 건축주가 하나의 성공적인 건축물을 구축하여 도시 전반에 긍정적인 기반을 다져놓은 다이칸야마가 무척 부러운 하루였다. 주요 개념 1.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스케일의 일정함 2. 외관과 거리 공간의 정교한 상호 작용 3. 주거 공간의 독립성과 프라이버시 유지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7] 힐사이드 테라스 C, D, E동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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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17일
In 도시공상
힐사이드 테라스 (다이칸야마) 화창한 금요일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서둘러 다이칸야마로 향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이칸 야마에 새로 조성된 츠타야 티 사이트가 궁금해서 무척 설레었다. 힐사이드 테라스는 다아칸야마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될 수 있는데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힐사이드 테라스 A, B, C, D, E, F, G, H동 그리고 아넥스 A, B동, 힐 라이드 플라자, 힐사이드 웨스트로 나누어져 다이칸야마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주택과 점포가 공존하는 복합 용도의 힐사이드 테라스는 1969년부터 1998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지어진 건축이다. 건축가는 일본인 2번째로 건축가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마키 후미히코이다. 지금의 다이칸야마는 도쿄도에서도 떠오르는 Hot Place이지만 힐사이드 테라스가 들어서기 전에는 무성한 녹색 들판만 펼쳐진 경사지였다. 이 지역의 대부호였던 아사쿠라게 가문에서 당시 정치가였던 아사쿠라 토라지로와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와의 인연으로 다이칸야마 집합주택 계획을 함께 설계하게 되었다. 이때 개발 방식이 성급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편안한 장소로 유지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진행되길 바랬다. 이에 따라서 힐사이드 테라스 12개의 주동은 7단계에 나누어 건설되었다. 제1기 _ 1969년 : A, B동 제2기 _ 1973년 : C동 제3기 _ 1977년 : D, E동 제4기 _ 1985년 : 아넥스 A, B동 제5기 _ 1987년 : 힐사이드 플라자 (B동과 C동 사이 지하공간) 제6기 _ 1992년 : F, G, H동 제7기 _ 1998년 : 힐사이드 웨스트 (A~H동과 10분 정도 떨어진 위치, 마키후미히코의 사무실이 있음) 당시 이 지역은 최고 높이 10m 및 용적률 150%로 제한되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으로 오로지 주택만 건설이 가능했으나 후미이코는 이곳이 교통량이 많은 대로와 접하고 있어 추후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행정기관과 교섭하여 용도 규제를 완화시켰다. 주거 + 상업 + 문화 + 업무가 공존하는 무지개떡 건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용도지역으로 도시를 구획화하는 도시계획은 그림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현실에서는 일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초기 신도시 개발은 대부분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도시 개발 방식을 채택하여 주거지역의 경우 낮 시간에 텅 비고 업무지역의 경우 주말에 텅 빈 도시 공동화 현상을 만들었다. 다시 힐사이드 테라스로 돌아와서, 수십 년 동안 여러 단계에 걸쳐 개발되다 보니 건축적 시공 공법이나 재료 그리고 건물의 스타일은 변화되었지만 마스터플랜을 통한 공간 디자인의 철학과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주요 개념 1.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스케일의 일정함 2. 외관과 거리 공간의 정교한 상호 작용 3. 주거 공간의 독립성과 프라이버시 유지 [참고 : ho_on.hh 's Archive (tistory.com) ] 힐사이드 테라스 A, B동 (1969년 준공) 힐사이드 테라스는 감동 그 자체였다. 1969년에 이런 건물을 설계하고 건축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다. 건물의 완성도와 세련된 마감재 적용과 매스 감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너무나 잘 관리되고 있는 건물의 상태에 감동했다. 건물의 정면은 도로에 접하고 배면은 아사쿠라게 가문의 저택과 면한다. 건축적 스케일감은 무척 편안하고 인도와 건물의 관계는 밀접하고 다양하며, 실내외 공간의 연결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A동에서 시작해 H동까지 이동하며 2~3개 층의 공간이지만 반 층 높이를 오르내리며 실내외를 번갈아 가며 이동하면서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했다. 1층의 상업시설은 유리면으로 개방적이고 상부층의 주거와 사무공간은 정교하게 분리되어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단지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 힐사이드 테라스의 놀라운 점 중에 하나는 조경이다. 건물의 주출입 동선마다 우뚝 선 나무는 작은 마당을 풍요롭게 하고 공간에 개성을 부여했다. 적절한 위치에 멋진 나무들이 우아한 모습으로 서있다. A동을 들어서면 외부의 바닥 마감재가 내부까지 자연스럽게 들어오다 진한 색상의 타일로 바꾸어 주었다. 바닥 높이가 계속 변하는 공간에서 붉은 톤의 강렬한 색상의 바닥은 마치 외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도 하고 계속 하서 이동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A동과 B동은 외부 계단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두 동 사이에는 인도보다 낮은 레벨의 외부 마당이 있다. 외부 계단에 의해 인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건물에 둘러싸여 아늑한 공간이다. 1단계와 2단계 사이 빈 공간으로 지하에 3단계로 진행된 힐사이드 플라자가 있다.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6] 힐사이드 테라스 A, B동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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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17일
In 도시공상
공간을 만드는 행위가 건축이라면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빼놓고 건축을 말할 수 없다.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매개체들 간의 작용(EVENTS)들을 어느 정도 예상하며 디자인하는 것은 건축 공부를 한 이라면 알고 있는 개념일 것이다. 그리고 사용하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건축이라면 이 행위는 고상한 건축가들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비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건물주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곧 그 나라의 건축(공간)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높은데 건축(공간)문화 수준이 낮은 곳은 없고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건축가들을 많이 배출한 국가의 시민들이 건축가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존경이 뭍어난다. '공간의 수준'이라는 말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공간의 수준이라는 개념은 비싼 돈을 들여서 화려하게 건물과 도시를 치장해가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나는 공간의 수준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본의 논리와 효율성이라는 강력한 시대정신을 역행하여 진실로 인간을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가 얼마만큼 구현되었는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작금의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건데 한국에서 양질의 공간을 뽑아내기는 몹시도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건물을 지어서 수 억원의 이득을 볼 수 상황 속에서 일부를 공익을 위해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내 놓는다는 표현은 자본가 입장에서의 뉘앙스이고 공공을 위한 방향성과 개인의 이득을 위한 방법 사이의 대치라고 달리 얘기해보자. 사실 이런 경우는 순차적으로 벌어지기 보다는 설계 단계부터 준공이 될 때까지 심지어 건물을 다 짓고나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기부채납이나 공개공지와 같이 흔히 알고 있는 제약 뿐 만 아니라 공용 공간의 비율과 화장실의 규모와 형태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자본과 공익의 대립은 어쩌면 흔한 클리쉐이지만 공간(건축, 도시)디자인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처럼 공간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 대부분이 투자를 하여 이득을 내는 등식과 반대 방향에 놓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를 개인이 쉽게 허용할 리가 없다. 내 돈을 사회에 내 놓으라니! 자본주의 체제 그 어떤 국가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허용의 정도가 차이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차이가 결국 그 나라의 공간(건축, 도시)수준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결국 건축, 도시에 걸친 공간 문화 산업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만큼 온 국민이 부동산 투자에 매몰되어 있는 나라는 없다. 이는 단언코 확실하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엄청난 숫자가 이를 방증한다. 한국인 삶의 화두가 부동산일지니 광풍은 도무지 사그러들 줄 모른다. 이렇다보니 건축물은 곧 부동산의 투자 대상이고 건물 한 평이 곧 내 피와 같은 돈에 불과하다. 부의 축적이 곧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기에 건물과 도시는 단지 화폐로서 계량될 수 있는 수단 일 뿐이다. 이게 곧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버렸다. 만약 이를 정량화 할 수 있다면 공간 산업의 자본주의 잠식도는 전 세계에서도 일 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토록 부동산에 매몰되어 버렸을까? 부동산을 통해서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판이 짜여지도록 유도한 정부의 방관과 부추김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통한 주택 사업은 90년대에 멈췄어야 했다. 큰 돈을 단기간에 만질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공간 산업의 양태는 마치 도파민 중독과 같다. 더 강력한 자극만 찾는 이들에게 양질의 공공 공간이 우리 삶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당장 이득을 봐야하는 한국인의 속도에 맞지 않을 뿐더러 이미 돈 맛을 봐버린 사람들이 이를 포기할 리 만무하다.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느 나라나 부동산 개발은 필요하고 투자 가치로서 공간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단순히 금전적 이익만을 쫓을게 아니라 공공성을 충분히 배려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제도와 법률로서 이를 제어해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시각이 당연한 가치관으로 바뀌는 풍토를 만들어내야 한다. 모두를 위한 공공 공간은 항상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땅이 잘 팔려야만 신도시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일까? 좋은 자리는 상가와 주거(아파트)가 차지하고 남은 자투리 같은 곳에 공원이나 문화시설이 들어선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도시를 잘라먹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단절 시킨다. 도시의 보행로는 오늘도 자전거 도로와 그 좁은 폭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부동산 광풍은 언젠가는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뻔한 얘기겠지만 중독을 극복하는 방법은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방법 뿐이다. 조금씩이라도 사회에 건강한 공간 문화가 싹 틀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렇게 담론만을 성찰해 보면 어디부터 바꾸어야 할 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 십년 가까이 이 업종에서 일해오며 느낀 점은 이 막막함이다. 우리는 적절치 않은 시기에 태어난 건축가들 일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으로 보면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점진적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이 저항에 맞서는 일종의 의무(?)내지는 소명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 줄 남은 자존심마져 무너질 수 있다는 어쩌면 강박감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한민국의 건축 산업 문화에서 디테일이 갖는 의미를 그런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은 지점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관철시키느냐의 태도가 21세기 대한민국의 건축가라는 이름을 스스로 되뇌일 수 있느냐 혹은 그럴 자격이 없느냐를 가름짓는 잣대라고 스스로 규정지었다. 우리는 공간의 수준이 더 깊은 바닥으로 치닫는 일을 막아내는 마지노선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포장하고 나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비춰질지도 모르지만, 돈 못벌고 배고프고 무시당하기 일쑤인 우리가 이렇게라도 자기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필드이기도 하다. 일본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여덟 명(*횟수는 7회)이나 배출한 나라이다. 단일 국가로는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다. 쉽게 얘기해 세계에서 공간 문화의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말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명의 수상자도 나오지 않는가?"는 식의 비판이 쏟아진다. 이 사태에 건축가의 책임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건축가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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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5일
In 도시공상
2023.03.23 키바 공원 미요시 주택단지 코단 시노노메 답사를 마치고 서둘러 키바 공원 미요시 주택을 보러 버스를 탔다. 전에 도쿄에 왔을 때는 항상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이번 답사에서는 구글 앱 덕분에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버스를 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3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면서 몸을 좀 추스르고 키바 공원 미요시 주택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멋진 인테리어의 동네 핫플레이스 카페를 두 곳 정도 지나가며 답사를 마치고 꼭 들려서 커피를 마셔야지 했지만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배고 너무 고파 미요시 주택 인근의 햄버거집에서 시원한 생맥주와 햄버거를 먹었다. 우리의 도쿄 공동주택 답사지 중에서 가장 준공연도가 빠른 미요시 주택단지는 1982년에 준공되었다. 사카쿠라 건축연구소 설계했고 약 0.5ha 대지에 3~4층 규모로 96호의 세대가 있다. 단지는 도로에 접한 부분이 많지 않다. 주출입구에서 2개의 출입구가 있도 배치도에서 보면 우측으로 어린이 공원과 접해 도로로 갈 수 있다. 배치도 서북쪽으로 부출입구가 있다. 주차는 15대로 가구 수에 비해 주차 대수가 매우 적다. 대신 단지안에는 크지는 않지만 중정이 있고 건물 주변으로 조경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다. 단지 주출입은 주차장을 지나 건물 하부를 관통해 이루어진다. 주출입구에는 단지 배치도가 금속판에 설치되어 있다. 배치도 간판에서 보면 건물들이 서로 다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1층 레벨에서 보면 각 건물들 사이사이가 계단이나 이동 통로로 되어 있어 대지 면적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개방적이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건물 주출입구를 들어서면서 보이는 단지는 한마디로 깔끔하다. 최근에 도장을 새로 한 것처럼 외벽은 백색으로 오염 없이 깨끗하고 발코니 난간은 진한 회색으로 선명하다. 1층 마당의 조경은 잘 정돈되어 있고 3층 또는 4층 개별 세대까지 이동하는 공용 통로는 모두 외부 공간이다. 1층 세대는 대부분 마당에서 직접 출입하는 방식으로 현관이 배치되었다. 각 세대의 앞뒤로 발코니가 있어 세대별 생활 모습이 조금씩 바깥으로 노출된다. 3층과 4층의 최상층은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펴면 구성에 따라 입면 지붕 경사 방향이 정해진다. 외부 계단을 올라 계단참에 2세대의 현관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파트 현관이 방화문 하나로 구성된 것과 달리 우체통과 수납공간이 현관과 하나가 되어 현관이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성 때문인지 실제 집 안의 크지는 아주 크지 않더라도 집이 클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3층에는 일부 공유 발코니가 있어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유 발코니는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배도 고프고 오전의 답사로 좀 피곤한 탓에 큰 기대 없이 미요시 주택을 답사했는데 기대보다 아담하고 소박한 공유 주택단지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래된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굉장히 잘 되고 있어서 주차공간도 없고 실내고 그렇게 넓지 않지만 거주하기 나쁘지 않아 보인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조경공간이 있는 중정은 산책하기 참 좋은 공간이다. 키바공원 주변의 일부 상업시설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동네 분위기는 매우 차분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주거 단지이다. Copyright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5] 키바공원 미요시 주택 단지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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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14일
In 도시공상
2023.03.02 코단 시노노메 집합 주거 단지 (준공 : 2003 ~ 2005) 24시간 영업하는 마츠야 롯폰기점에서 일본식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코단 시노노메 집합주거 단지로 향했다. 다쓰미 역은 아담하고 조용하다. 별생각 없이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주거 단지로 향하는 보행교에 이른다.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개방된 풍경 너머 주거 단지가 보인다. 낭만적인 접근 방식이긴 한데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기분 좋게 걷기는 힘들겠다. "당초 공장이 입지해 있던 16헥타르의 부지를 도심 주택지로 재생하는 대규모 토지 이용 전환 프로젝트로 일반적인 집합주택과 달리 도심 거주를 전제로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응하려는 계획 의도를 가지고 있다. (중략) 지구 전체는 크게 운하 지구, 중앙지구, 임해 가로지구의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시노노메 코단은 중앙지구에 해당한다. 이 지구에서는 전체 개발 개념을 설정하기 위해서 색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즉 도시공단에서 위촉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가로경관가구 기획회의를 결성하고 이 기획회의에서 지구 개발의 이념을 정리, 제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개발 사업을 문화적 코드로 전환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 [출처 : MA와 하우징 디자인/ 공동주택연구회 지음 P273] 특이하게도 이 기획회의의 좌장은 건축가나 도시설계 전문가가 아닌 작곡가인 사에구사 시케아키가, 방송 PD인 잔마 리에코가 실무 코디네이터로 이 지구의 개발 컨셉을 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다섯 가지 기획 개념을 제안했다. 새로운 시대의 양호한 환경 정주 감각에 의한 생활 변화 다양한 생활 양식에 대한 대응 24시간 생활 시대의 요구 창출 어제 방문한 마쿠하리 베이 타운이 직주근접 거주지를 만드는 목표를 가진 반면, 코단 시노 노매는 일과 거주가 혼합되어 있는 주거 방식을 전제한다. '이 가로를 도심 거주를 향한 선도적 프로젝트로 만들기 위해서는 24시간형의 길을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일하고 잠자러 돌아오는 것만이 이루어지는 마을이 아니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마을 밖에서도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등 도회적인 자극이 충만한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by 기획회의 좌장인 사에구사 시게아키 이 지구의 조성 방식은 각계 오피니언 리더로 구성된 가로경관가구 기획회의에서 새로운 도심 거주의 실현을 향한 컨셉을 제안하고 설계공모에 의해 선정된 건축가와 조경가로 구성된 시노노메 디자인 회의에서 지구 전체 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마을 만들기 이념을 보여주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책정하여 설계를 진행했다. 단지의 전체 기본계획은 일본의 유명 건축사사무소 니켄세키에서 담당하여 토지이용계획, 지구 시설의 정의 각 주거동의 매스, 도시 선형, 녹지 및 공원 등을 계획하고 계획 호수, 규모 등을 설정했다. 시노노메의 중심을 가르는 S자형 보행자 도로는 단지 기본 계획에서 주어졌다. 기본적인 단지 계획이 결정된 이후 제안 공모 방식의 현상설계를 통해 각 주거 블록의 설계자를 선정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지명공모나 제안 공모를 통해 자격심사를 거쳐 건축사를 선정하는 사례가 있지만, 시노노메의 건축 설계자를 선정하던 당시만 해도 제안 공모는 낯선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수한 건축가들이 단지 설계를 하게 되었다. 디자인 어드바이저 : 야마모토 리켄 1블록 : 야마모토 리켄 2블록 : 도요 이토 3블록 : 구마 겐코 4블록 : 야마 설계공방 5블록 : ADH ·워크스테이션 6블록 : 모토구라 마코트 + 야마모토 / 호리 아키텍트 조경설계 : 이오사이드 계획 설계 사무소 존경하는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가 1블록 설계와 각 블록의 설계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공단과 함께 지속적인 디자인 회의를 통해 유동형 성격을 가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각 주거동을 설계했다. 디자인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루어졌으며 회의에서 각 블록의 설계안이 단계별로 작성되면 전체 부지 모델에 같은 재질, 같은 스케일의 모형을 만들어 와서 올려놓고 각 블록의 상호 관계나 경관 차원의 조정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체 디자인의 조화를 확보했다고 한다. 시노노메 단지는 기본적으로 기존 주거 단지 계획과 달리 거주와 일을 위한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다이내믹한 도심 거주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족형태를 위한 거주공간도 있지만 일과 생활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의 구성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층에는 S자형 보행로 도로를 따라 상가와 주거동의 로비와 주차장과 같은 블록별 공유 공간이 있고 2층에는 공유 데크가 있다. 총 14개 층 중에 저층부에는 소호 형태의 주거와 사무가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어 업무의 편의성을 도모했다. 폭 3m 와 높이 3m의 모듈로 계획된 다양한 평면이 제공되어 입주자들은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코단 시노노메의 건폐율은 평균 65.9%, 용적률은 평균 419%이며 주거동은 14층이다. 우리나라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이 평균 20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현저히 높다. 우리나라 단지형 아파트의 개발은 낮은 건폐율에 높은 용적률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과 동 사이가 멀어 충분한 녹지나 부대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좋은 주거 단지라고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건폐율이 낮고 용적률이 높으면 결국 이웃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히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우리나라 일반 주거 단지의 건폐율이 법적으로 대지면적의 60% 이하로 제한되는 것도 미래를 위해서는 부적절한 법일 수 있다. [참고 : MA와 하우징 디자인 / 공동주택연구회 지음] 우리는 1블록의 1층에 자리한 동네 빵집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를 마신 후 단지를 둘러보았다. S자형 보행도로는 직선의 보행로보다 안정감이 있고 시선의 변화를 주어 걷는 재미가 있었다. 1층에는 편의점, 유치원(YMCA), 학원, 관리사무소, 병원, 골프연습장, 어린이 용품점, 식료품점 등이 있고 보행도로에서 단지로 진입이 열려있는 구조를 가진다. 물론 실제 주거 단지 내부는 입주자만을 위한 공간으로 잠금장치가 되어있다. 운이 좋게 우리는 1블록, 2블록, 그리고 3블록의 공용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단지 전체는 정확하게 'ㅁ'자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획일적인 방향으로 동일한 주거동이 반복된 것이 아니라 방향과 평면의 짜임새가 다 달라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건축물의 디테일 또한 우수하고 전체적으로 색감이 유사하여 통일감이 있다. 6동 내외부 도장 공사를 위해 어마 무시한 가시설을 하고 있어 입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우리나라 아파트 외벽도색 공사가 대부분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아슬아슬하게 공사하는 것에 비해 일본의 가시설은 놀라울 정도로 꼼꼼했다. 돌출된 발코니와 외장재들이 다양해서 그럴 수도 있고 법규에 의해 규정되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 채 단지를 둘러보았다. 우선 코단 시노노메 초입에 있는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1블록은 도요 이토가 설계한 2블록과 2층 공용부에서 연결되며 디자인 또한 유사하여 통일감 안에 차별성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1블록보다 2블록의 공유 발코니가 입주민에 의해서 더 잘 활용되고 있었다. 정확하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2블록의 경우 1블록보다 공유 발코니가 더 많이 있어 주민들이 사용할 기회가 더 많고 가족 중심의 세대가 더 많아서 일 거라고 추측해 본다. 1블록은 층마다 다른 줄무늬 색상으로 생기를 주었고 현관문은 유리 문으로 되어 있어 특별히 시트지를 바르거나 커튼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 복도에서 실내를 살짝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개인의 사적 공간이 밖으로 보이기를 꺼리는 경우는 유리 현관문을 선호하지 않겠지만 1블록의 많은 세대들이 크게 개의치 않고 사적 공간의 일부를 드러내며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피규어를 모으고 자전거를 즐기는 취미까지 전시해 놓은 경우도 있다. 야마모토 리켄이 국내에서 설계하여 2013년 준공된 LH 강남 3단지 공동주택에도 동일한 유리 현관문을 적용했다. 하지만 설계자의 의도는 전혀 존중되지 못했고 주민들의 불만이 접수되자 준공 후 대부분 일반적인 현관문으로 교체되었다. 1블록은 'ㄱ' 자로 꺾인 형태인데 서로 다른 방향의 동이 연결되는 부분에는 외부 연결 다리를 설치하여 건물 사이로 바람길을 만들어 주고 시각적으로도 건물이 너무 크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사실 이 연결 다리가 좀 무섭기는 하다. 하지만 이 다리를 지나며 감상할 수 있는 도시의 풍경과 도시에서 이 틈을 통해 단지 건너를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선택이다. 2블록의 1층에는 YMCA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단지 전체에 전해진다. 중정을 중심으로 교실이 배치되고 흙바닥의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논다. 선생님들은 교실로 흙먼지가 들어올까 부지런히 빗질을 하고 있었는데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운동장 뿐만 아니라 보행자 중심의 단지 사잇길 들과 2층의 공유 공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2블록의 공유 데크는 마주 보는 2세대가 하나의 데크를 함께 사용하는데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옥외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일부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유 발코니를 쓰레기장처럼 쓰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2블록도 1블록과 마찬가지로 색상을 적극적으로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데 1블록이 줄무늬 색상을 사용한 것과 달리 솔리드 색상을 바닥과 천장 그리고 세대 현관문에 사용하였다. 특이한 전체 복도 천장에 설치된 금속 루버는 백색인데 루버 위 콘크리트 색상에 따라 복도의 분위기가 달라져 긴 중복도의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우리가 복도까지 들어간 3개의 블록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복도의 모습이었다. 구마 겐코가 설계한 3블록은 세련미가 넘친다. 그레이 톤의 메탈을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적절한 간격의 수직 금속 난간은 발코니 내부의 모습을 살짝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S자형 보행 도로에서의 진입 또한 그랜드 한 계단을 통해 할 수 있고 두 개의 동 사이에는 층마다 다른 위치에 연결 다리를 주어 블록 안에서 다양한 이동 방식을 제안한다. 2층의 일부 세대는 공유 마당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사무실과 주거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세련된 건물의 2층 공용부의 우편함은 아날로그 감성의 열쇠로 장식되었다. 3블록의 두 동 사이는 결코 멀지 않다. 서로 마주 보며 긴 복도가 있고 복도의 끝에는 수직 계단이 있다. 물론 이 연결 다리가 얼마나 자주 이용될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동선의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은 하루를 좀 더 풍요롭게 한다. 3동은 유난히 건축가의 섬세함이 눈에 띈다. Pre-fabricated concrete로 만든 계단참, 햇빛은 가리지만 바람은 통하는 금속 루버 캐노피, 계단 중앙에 조경을 설치하고 나무가 있는 곳에 금속 루버와 안전대를 설치한 것 등등.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져 보는 즐거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4블록은 공유 데크에 원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이웃이나 친구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담소 나누기 좋은 공간이다. 공유 데크를 바라보며 세대별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어 주민들이 서로 마주칠 기회가 많아진다. 일본에서는 발코니에 빨래를 자연 건조하는 것이 일상처럼 보인다. 4블록의 공유 데크는 이페 목재로 되어있어 튼튼하고 색상이 차분하다. 공유 데크에서 다시 넓은 계단을 올라 조경이 있는 공유 마당이 있다. 도쿄를 며칠간 돌아다니며 본 대부분의 주거용 건물에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외부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발코니가 만드는 풍경이 다채롭고 도시의 풍경이 삭막하지 않았던 거 같다. 국내 주거공간에는 대부분 발코니를 실내화하여 안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고 어딜 봐도 칙칙한 건물들만 특징 없이 서있는 모습이 도시를 잠식하고 있다. 또한 공동주택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동일시하는 개발 방식 때문에 우리의 도시는 건축적 다양성이 없고 평면도 획일화되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자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짐에도 주거와 업무시설은 한 공간에서 있을 수 없고 분리되어야 한다는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도시는 고칠 것이 참 많다. 코단 시노노메는 비그라운드 아키텍츠가 상상하고 있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실현해 놓은 주거 단지다. 중층 고밀, 저층부의 상업시설, 주거시설과 업무시설의 혼용 등의 방식은 고층 고밀, 주거 전용으로 되어있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필요한 변화이다. 주거와 업무공간이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공간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도시가 미래 사회에 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코단 시노노메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되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어떤지는 이번 방문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잘 정돈된 다양한 형태의 공유 공간과 S자형 보행 도로를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모면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경직된 우리의 주거공간도 이제 새로운 시도와 시대에 적합한 변화를 시작하길 바란다.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4] 코단 시노노메 집합주거 단지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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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08일
In 도시공상
2023.03.01 마쿠하리 베이 타운 블루 버틀 롯폰기점에서 핸드드립 커피와 아보카도 토스트로 럭셔리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쿠하리 베이 타운으로 향했다. 마쿠하리 베이 타운 마쿠하리 역에 내리면 대규모 상업시설이 있다. 쇼핑몰을 통과하여 잔디와 조경이 잘 가꿔진 공원을 지나 보행 육교를 건너서 마쿠하리 베이 타운에 진입한다. 도쿄는 서울보다는 날씨가 좀 따뜻하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넓은 잔디 위를 뛰어노는 어린이가 많았다. 이 지역은 1960년대부터 도쿄의 도시 확장과 외연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뉴타운 조성 대상지였다. 그러나 1979년부터 이 지역을 도쿄 주변의 베드타운 형태의 신도시로 조성하기보다는 직주근접형(같은 도시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형태) 신도시 주택지로 만들자는 논의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계획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마쿠하리 역을 중심으로 상업시설이 만들어졌고 바깥쪽으로 주택단지가 조성되었다. 마쿠하리 베이 타운은 1960년대부터 바다 일부를 매립하여 만든 땅에 세워졌다. 다양한 건축가와 사업자가 참여하되 Master Architect를 중심으로 한 설계 가이드라인을 세부적으로 제시한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1층에서 바로 개별 세대로 진입하는 연도형 주택과 중정형 주택을 실험적으로 구현했다. 고층 고밀의 단지형 개발이 아닌 중저층 고밀의 중정형 집합주택을 계획했다. 중정형 주택은 남향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는 개발 방식이다. 공공이 주도하고 지방 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 개발업자 등 다양한 사업 주체의 참여로 진행된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으로 모든 개발 사업 참여 주체의 건축 행위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여러 사업 지구로 나뉘어 있는 대규모 주택 지구의 디자인을 일관성 있게 계획한 대표 사례이다. 그리고 사업 계획 조정위원 방식을 채택해 사업 주체와 개발 주체 중간에서 사업 취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이 역할은 지바현과 민간이 각각 지분을 출자해 만든 제3의 기구인 지바현 기업청이 맡았다. 기업청은 도심형 주택의 혁신을 의도한다는 차원에서 도시계획 전문가인 공학원 대학의 와타나베 교수와 전 건설성 주택과 부장을 역임한 미노하라 케이를 사업 계획 조정위원으로 위촉하고 사업 추진을 총괄하도록 했다. [출처 : MA와 하우징 디자인/공동주택연구회 지음] 1983년에 세워진 1차 마스터플랜은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개발과 유사하게 남향의 평행 및 분산 배치로 단지의 성격이 강하다. 이때부터 도쿄 주변 신도시로 조성하기보다는 직주근접형 신도심 주택지로 만들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1989년에 이루어진 2차 마스터플랜부터 '일상적인 생활공간의 구현과 확장'이라는 테마로 단지 방식을 탈피하고 가로와 건축의 관계에 주목하고 길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단지형 공동주택 개발이 많지 않다. 일본도 마쿠하리 베이 타운과 같은 방식의 개발이 지속적으로 어우러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단지 방식을 탈 비하는 신도시 개발 시도는 이후의 집합주택 계획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90년에 완성된 3차 마스터플랜에서는 단위 주거의 분배 조정, 임대와 분양의 분배 조정, 상가 활성화 방안, 점포 병용, 주택 적용 등 구체적인 사항들을 조정했다. 마쿠하리 베이 타운은 1995년에 준공되었고 1층은 상가, 주차장, 또는 공용공간 등이 있고 2층부터 7층까지가 주거공간이다. 우리나라의 1기 신도시와 비슷한 시기인 1995년에 준공된 도쿄의 신도시 마쿠하리 베이 타운의 30년 가까이 된 모습은 차분하고 깨끗했다. 우리가 도착한 오전 10시의 거리는 한산하고 상점들도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보행로와 차로의 단 차이가 없어 보행하기가 무척 편했다. 도시가 대체적으로 평탄해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단지 내부에는 자동차 주차장 만큼 넓고 잘 관리된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공원에서 육교를 건너면 도로변을 따라 1층에 상가가 조성된 중정형 단지들이 줄지어 있다. 30년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전체적인 건물 디자인이 요소가 너무 많아 산만해 보였다. 그중 미국 건축가 Steven Holl이 설계한 단지는 적절한 색상과 형태 그리고 개성 있는 공용 시설과 조경공간으로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도로의 여러 방향에서 단지 중정으로 진입할 수 있어 디자인 가이드라인의 의도에 맞게 폐쇄적인 단지가 아닌 길을 만들어 주변과 어울릴 수 있도록 계획했다. 대부분의 단지들은 중정에 주차장과 조경 및 휴게공간이 위아래 수직으로 구분되어 설치되었지만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달리 중정은 외부인에게 폐쇄적이다. 단지마다 도로에서 중정 사이 시각적 연결은 가능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잠금장치를 설치해서 진입할 수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중정의 디자인이 조잡해고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단지 거주자들도 잘 사용하지 않아 보인다. 분명 중정형 중층 고밀의 도시는 고층 고밀로 조성된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보다는 편안하고 덜 폐쇄적이다. 하지만 격자형의 반복되는 단조로운 도로 모습과 직주근접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떨어져 있어서 상가도 활성화되지 않고 거리에는 활기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굉장히 눈에 띄는 새로운 풍경을 만났다. 바로 담장이 없는 초등학교다. 마쿠하리 베이 타운에는 2개소의 초등학교가 있는데 둘 다 저층(2층)의 건물로 대부분의 교실은 1층에 있고 실내 활동이 외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되어있었다. 도로에서 여러 방향으로 학교를 관통하는 출입구도 있고 운동장은 도로와 자연스러운 조경으로 분리되지만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높은 담장이 학교와 도시를 단절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학교 모습과 무척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결론적으로, 마쿠하리 베이 타운은 기대만큼 혁신적이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신도시가 만들어진 과정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의 적용이다. 사업의 주체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좀 더 좋은 주거환경과 이곳에 정착할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변경하면서 만들었던 섬세한 계획과 정책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단기간에 1기 신도시를 만들었던 우리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건물의 형태가 중정형으로 동일하지만 각 건물마다 서로 다른 건축가가 참여하여 다양한 재료와 색상의 개성 있는 건축물을 만든 것도 획일적인 우리의 아파트 단지와는 크게 다르다. 모든 단지의 중정이 길로 통하지는 않지만 일부 단지와 학교가 길이 되어 주변과의 소통을 이룬 것도 강력한 디자인 가이드라인 덕분이다. 대한민국의 1기 신도시는 단지형의 고층 고밀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그 후의 단지들은 더 폐쇄적이고 더 높게 개발되면서 주변 도시와의 관계성을 고려하지 않고(고려할 필요가 없게) 개발되고 있다. 마쿠하리 베이 타운이 이상적인 도시는 아니지만 연도형 주택과 중정형 주택의 실험은 배울 점이 많다. 새로운 도시형 주거 단지를 만들면서 단지형 개발이 아닌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부럽다.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3] 마쿠하리 베이 타운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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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07일
In 도시공상
2023.02.28 (답사 1일째) 새벽에 출발해서 점심때가 되어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형식적인 PCR 검사(10만 원이나 한다 ㅠㅠ)결과서와 VISIT JAPAN이라는 WEBSITE에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부여 받은 QR코드를 준비해서 나름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스카이 라이너를 타고 우에노 역에 도착하여 호텔이 있는 롯폰기까지 지하철로 이동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직까지 대부분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있어 우리도 눈치껏 마스크를 썼다. 서둘러 호텔에 짐을 맡기고 츠루동탄 롯폰기점에서 엄청난 양의 우동으로 끼니를 때웠다. 배도 부르고 일본에 온 실감이 조금씩 나는 설렘을 안고 2020년 재개발되어 핫플레이스가 된 미야시타 공원으로 향했다. ​ ​ MIYASHITA PARK (미야시타 공원) ​ 시부야역에서 유명한 스크램블 교차로를 건너(일부러 2번 건너긴 했다) 두리번거리며 10분 정도 걸어서 미야시타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은 1930년에 현재의 위치가 아닌 Meiji Street, Yamanote Line, Udagawa river와 Shibuya river 사이에 위치했다. 지도를 열심히 살펴봤는데 우다가와 강과 시부야 강이 모두 복개되어 정확한 위치 파악은 못했다. 아무튼 이런 공원이 도쿄 올림픽이 열리던 196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고 지상 공원으로 진구 거리 공원(Jingu Street Park)이라 불렸다. 그러다 시부야강이 배수로가 되는 공사 중에 지상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공원은 그 상부로 옮겨졌다. [위키디피아 https://en.wikipedia.org/wiki/Miyashita_Park 참조] 안타깝게도 공원과 그 주변은 혼잡한 도심지에 평온한 쉼터가 되지 못하고 노숙자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러한 공원에 변화를 위해 2011년 스포츠 브랜드 Nike가 미야시타공원의 이름을 사서 '미야시타 나이키 공원'을 만들게 되었다. 옥상 공원에 스케이트 보드장, 카페, 클라이밍 월, 조경 및 휴게공간 등을 설치하며 리모델링했고 설계는 일본 건축가 Atelier Bow-Wow가 진행했다. 이 당시에는 기존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깔끔하게 공간을 정비하고 스포츠 공간을 제공하는데 그쳤다. ​ 그러다 2020년 도쿄 올림픽과 시부야역 주변의 성장을 계기로 시부야구와 미쓰이 부동산이 협업하여 공원의 재개발이 진행되었다. 새로 조성된 공원은 부지 면적 약 1만 740㎡, 연면적 약 4만 6,000㎡, 총 길이 330m에 이르는 옥상정원이 있는 3층 규모의 ‘저층 복합시설’이다. 옥상에는 미야시타 나이키 공원으로 리모델링 되었을 때와 유사하게 스포츠 프로그램과 카페(스타벅스)가 들어섰고 공원 북측 끝에 4층부터 18층까지 'Sequence Miyashita Park'로 불리는 호텔이 생겼다. [livejapan website 참조 https://livejapan.com/ko/in-tokyo/in-pref-tokyo/in-shibuya/article-a0004242/ ] 미야시타 공원은 크게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고 그 사이 1층 중앙으로 도로(Mitake St.)가 지나간다. 2층과 3층에서는 도로 위로 입체적인 계단과 브리지로 연결된다. 우리는 시부야역에서 걸어오다 공원의 남쪽 중 기존 육교와 만나는 계단을 통해 진입했다. 공원은 기존의 육교와 남쪽 중앙 부분과 북쪽 끝부분에서 연결되고 Mitake St.에는 교차로가 있어 보행으로 진입하기 좋다. 건물 곳곳에 계단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 외관에는 상가와 옥상정원을 감싸는 반원 형태의 굵은 원형 금속 파이프 캐노피가 있다. 이 캐노피를 따라 덩굴식물이 자란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 큰 나무를 심을 경우 지진 발생 시 철로를 덮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서 도심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식물 캐노피가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디자인 호불호가 있어 우리 팀에서도 이 캐노피를 좀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고 재미있는 디자인 요소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Archdaily 참조] ​ ​ 건물 내부에는 상당히 고급 진 상가들이 자리하고 있고 1층 남쪽에는 훗카에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 지역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시부야 요코초가 있다. 한국식으로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의 공간으로 시원한 생맥주와 맛있는 일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보인다. 우리는 2층 카페에서 일본 특유의 달달하지 않은 커피와 음료를 사서 옥상정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도쿄에서는 스타벅스가 중요한 공공장소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야시타 공원뿐 아니라 우에노 공원,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티사이트 등등. 거리를 걷다 커피가 궁해 눈을 돌리면 보이는 것은 대부분 스타벅스다. 나중에 좀 찾아보니 일본은 카페 붐이 꺼져 커피를 아주 잘 하는 일부 카페만 살아남고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스타벅스가 대체하고 있다. 다양한 개인이 운영하는 개성 있는 카페가 많은 한국이 그리운 순간이었다. ​ [https://www.archdaily.com/971223/miyashita-park-nikken-sekkei 참조] ​ ​ ​ 공원은 남쪽 끝과 북쪽 끝뿐만 아니라 긴 형태의 사이사이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진입할 수 있어 꼭 건물 내 상가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맘 편히 옥상정원까지 올라가 시부야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즐기며 휴식할 수 있는 입체적인 공원이다. 옥상에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는 하지만 스케이트 보드장과 클라이밍 월이 있고 스타벅스와 호텔 4층의 분위기 있는 카페가 있다. 학생부터 중년 커플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들려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다. 몇몇 청년들이 춤 연습을 하기도 한다. 시부야역 주변 고층건물 신축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고 공원 바로 옆으로 수도 없이 기차가 지나가지만 미야시타 공원은 크게 개의치 않고 주변 풍경을 즐기며 쉴 수 있는 여유로운 곳이다. 뉴욕 하이라인의 짧은 버전 같기도 하고 엉성한 서울로 7017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기도 하다. ​ ​ ​ 노숙자들을 몰아내고 만든 공원은 이제 대부분의 공공(Public)에게 열린 공간이 되었다. 공원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재개발 과정에서 어딘가로 떠났을 노숙자들이 안쓰럽고 고급 상점으로만 채워진 상가들에 맘이 불편하다. 지금도 개발이 한창인 비싼 시부야역 주변에 그래도 이 정도의 공공 공간이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우리 도시에도 이렇게 공공에게 열린 상업시설이 좀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물론 그냥 공공 공간이면 더 좋겠지만.....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2] Miyashita Park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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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3월 06일
In 도시공상
도쿄 답사 기간 : 2023.02.28 ~ 03.04 ​ 서울과 많이 닮은 듯 다른 도쿄를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 작은 건축사사무소에서 전 팀원이(물론 겨우 4명이긴 하지만) 해외 답사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녹녹치 않지만 함께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며 나눈 시간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도쿄의 공동주택 답사이다. ​ 공동주택은 마쿠하리 베이 타운, 코단 시노노메 집합주거 단지, 키바공원 미요시 주택, 힐사이드 테라스, 그리고 오모테산도 힐즈를 방문했다. 주요 답사지 사이사이 2020년에 재건축된 미야시타공원, 동경 포럼과 철로길 아래 이자카야, 호류지 박물관, 다이칸야마에 생긴 츠타야 티 사이트, 토요일 차 없는 긴자 거리, 그리고 21-21 Design Sight를 찾았다. 하루 2만 보 이상씩 걸으며 고생스러운 답사를 마치고 저녁마다 맛있는 먹거리와 시원한 생맥주로 피로를 달랬다. ​ 우리는 나리타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롯폰기역 인근의 비즈니스호텔에 머물며 서울의 이태원과 비슷하게 외국인이 많은 롯폰기 지역의 음식점을 이용했다. 본격적인 건축 답사 후기에 앞서 이번 여행을 통해 도쿄에 대해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 첫째, 깨끗하다. 도시가 전반적으로 매우 깨끗하다. 미세먼지가 거의 없어 공기도 맑다. 건물의 연식과 상관없이 외벽과 유리창이 깨끗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물 청소나 유리창을 청소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거리에 쓰레기가 없고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담배 피우는 장소는 지정되어 있고 사람들이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끔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기는 하다. 불법 주차가 거의 없고 자전거 주차 시에도 사용료를 내는 시스템이어서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자전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에서는 자동차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주차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자전거도 등록제여서 일반 골목길에서 도로에 차나 자전거를 주차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길을 걸을 때 시야가 트이고 주변 상점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 도쿄의 거리는 깨끗한 인상을 준다. 둘째, 안전하다. 서울과 비슷하게 도쿄의 보행로도 그다지 넓지는 않다. 하지만 보행로를 무자비하게 달리는 오토바이는 없다. 자전거가 일상화 되어있는 일본에서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구분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자전거는 차로에서 달리고 인도에서 다니더라도 천천히 다녀서 보행 시 특별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자전거가 등록제다 보니 한국이나 다른 대도시처럼 아무 데나 세워진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상점의 입간판이나 세우는 광고판도 대지 경계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보행로가 넓지는 않지만 온전히 보행자의 공간이다. 이런 이유에 더해 가장 번화한 거리의 한켜에 위치한 파출소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도쿄의 주요 번화가마다 유리창이 큰 파출소가 인도에 바로 접해 있고 경찰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관광객에서 위치를 안내하거나 술을 먹고 싸움이 난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경찰관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도 비교적 안전한 도시에 속하지만 도쿄가 주는 안전함과는 차이가 있다. 서울의 치안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우리가 매일 걷는 보행 환경은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 ​ ​ 셋째, 디테일이 있다. 일본에서는 외부 마감재로 타일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코너에 사용하는 타일이나 다양한 종류의 타일이 있어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라도 타일이 색상, 크기, 패턴에 의해 개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보행로의 경우도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보도블록이 아닌 거리마다 독특한 마감재가 사용된다. 건물 커튼 월의 프레임도 각진 'ㅁ'자가 아닌 'ㅂ'자 형태여서 건물의 외관이 좀 더 샤프(sharp)해 보인다. 한국에서 설계를 진행하며 쓰고 싶은 재료나 구법이 구현되는 것에 어려움이 많은데 도쿄의 거리를 걷다 보면 금속으로 못 만드는 것이 없어 보인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고 싶으나 시공사가 항상 재료가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 아연도를 이용해 다양한 마감 효과를 낸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의 사용도 대중화되어 있고 유리 자동문의 경우에도 프레임이 매우 얇게 처리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에 기준에 적합한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기성품들의 디테일 수준이 건축가의 눈을 즐겁게 한다. 대부분의 화장실에는 영유아 거치대와 양변기 시트 소독 제품이 개별 칸막이마다 있다. 건축과 도시의 디테일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이다. 디테일이 있는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이기도 하다. ​ ​ 넷째, 노인과 아이들이 있는 도시 풍경이다. 도쿄에서 유난히 나이가 지긋한 노인과 만나는 기회가 많았다. 멋지게 차려 입고 거리를 걷는 노인부터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공사 현장에서 안전 안내를 하고 건물관리와 유리창 청소를 하거나, 공항에서 체크인을 할 때 짐을 옮겨주는 등 도시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의 고령화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진행되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노인들의 사회참여가 많아졌지만 아직은 은퇴 후 사회 참여의 기회가 많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일본의 경우 노인의 사회 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도 있다. 다음은 유아용 시트가 자전거의 앞뒤에 장착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엄마와 아이들이 빠르게 도시를 이동하는 모습이다. 출산율 0.7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대한민국에서 4인 가족은 이제 보기 힘들다. 자전거를 타고 활기차게 도시를 활보하는 젊은 부모와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도시에 생기를 더한다. ​ ​ 살고 싶은 도시(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도시의 청결과 안전, 그 안에서 다양한 구성원이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도시를 인간 중심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Copyright : 비그라운드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도쿄 건축답사 1] 도쿄의 거리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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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3년 2월 23일
In 도시공상
최초의 공동주택 우리는 공동주택에 수납되어 있다. 이렇게 된 사연을 살피자면 잠깐 산업혁명 시대의 유럽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속속 도시로 몰려들었다. 떠밀리듯 도시 노동자가 된 이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따라서 도시의 주거 공간은 빨리 지을 수 있는 구조, 다수를 한꺼번에 수용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싼값에 제공되었다. 이러한 공간의 위생 상태는 무척이나 열악했다. 공동주택 밀집 지역이 전염병의 근원지가 된다는 점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라 위생 개혁 운동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최초의 공동주택 거주자들은 급조된 데다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건설되었다. 같은 시기에 ‘아파트’라는 단어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식민지 공업화를 한창 전개하던 무렵의 일이다. 그때 만들어진 공동주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와 다소 거리가 있다. 대부분이 노동자용 주거 시설이었고 일부는 큰길가에 부대 편의 시설을 갖춘 형태였다. 세월이 지나 6.25가 휴전으로 마무리된 뒤 정부와 민간 업체들은 서울에 소규모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1956년에는 한미재단이 종로구 행촌동에 아파트 48세대와 연립주택 52세대로 구성된 주택단지를 조성했고, 1958년에는 중앙산업이 성북구 종암동에 종암아파트를 건설했다. 대중은 새로운 주거 시설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당도 없는 집에 어찌 사느냐’라는 말이 나왔으니 당대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공동주택은 어디까지나 임시 거처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선택지 그로부터 15년 동안, 서울에는 하루 평균 894명이 이주해 왔다. 이들 모두에게 집을 제공하려면 매일 224동의 주택을 새로 지어야 했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예측하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1960년대 내내 심각한 주거난이 이어졌다. 마당도 없는 공동주택은 어느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선택지로 자리를 잡아 갔다. 1960년 말에 이르자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불도저 시장이라고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판자촌을 허물고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3년 안에 아파트 2000동을 건설해 판잣집에 살던 9만 세대를 입주시킨다는 계획 아래 추진한 사업이었다. 이 야심 찬 사업은 1970년 와우시민아파트가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되면서 막을 내리고 만다. 건축 기술과 제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에 무리한 목표를 세운 시점에서 이미 비극적인 결말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기 공동 주거 단지의 실상 판잣집에서 살던 대부분의 주민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로 강제 이주되었다. 서울시는 대규모 주거 단지를 마련했다며 해당 지역을 분양했지만, 그곳은 도로는 물론이고 상하수도 시설조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14만 명에 이르는 이주민들이 집 대신 받은 것은 군용 텐트였다. 서울시는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약속 또한 지키지 않았다. 마땅한 교통편이 없었기에 일터를 찾으러 외부로 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주민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에 따르면 배가 고파서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참혹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정부는 처음 제시했던 땅값의 4~8배에 이르는 금액을 요구했다. 자체 재원만으로는 주거 단지 건립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서울시 측이 필요한 비용의 대부분을 이주민이 부담하도록 떠넘긴 탓이었다. 격분한 이들은 결국 1971년 8월 10일 대규모 봉기에 나섰다. 분양가를 내리고 취업 대책을 마련해 생계를 보장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겠다고 밝힌 서울시장은 이주민 단지를 시(市)로 승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가 지금의 성남시다. 현재는 성남시 중원구와 수정구에 속해 있는 옛 이주 단지 지역에 가 보면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소규모 공동주택을 쉽게 볼 수 있다. 판자촌 이주민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집들이다. 분당 신도시라는 번듯한 분칠을 했을지언정, 최초의 성남시민들이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잘못된 개발 정책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정부가 잘못 끼운 첫 단추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와 8.10 성남 항쟁(광주 대단지 사건)이 벌어진 뒤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소형 아파트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용산과 강남 등에 중산층을 위한 주택 단지가 들어섰고 이후 아파트 대량 공급의 시대가 도래했다.(박철수, 《한국 주택 유전자》) 우리는 바로 이 시기가 우리나라 특유의 ‘아파트 현상’이 시작된 시점이라고 본다. 주거 공급 정책의 초점이 서민에서 중산층으로 바뀐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짚을 수 있지만 대외 선전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견제하며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경제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아파트는 이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1970년,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에 한강맨션아파트가 들어섰다. 본디 고급 저택을 일컫는 말인 ‘맨션’(mansion)을 아파트 이름에 붙인 첫 사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중산층 이상에게 분양하고자 건설한 이 아파트는 최대 55평형에 이르는 넓은 면적을 자랑했다. 입주자들 중 몇몇은 수입 명품 등의 사치품으로 집 안을 도배했다. 백화점에서 ‘맨션 사모님’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과소비를 조장하는 호화 아파트라는 비판이 언론에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박철수, 《한국 주택 유전자》) 아파트는 시기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주거 시설에 따라 사회적 계층을 가르는 풍조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대한주택공사가 진행한 한강맨션아파트 건설 사업은 기존의 공동주택 사업과는 확연히 다른 색채를 띠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에게 주택을 공급하고자 공공 자금을 들여 만드는 시설이었다.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에 공적인 비용을 쓴다면 대한주택공사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터였다. 타개책은 선분양이었다. 1970년 즈음에는 선분양이 낯선 방식이었기 때문에 대한주택공사는 국내 최초의 견본 주택(모델하우스)을 지어 홍보에 나섰다. 전 세대 분양이 성공리에 완료되었기에 건설비는 예비 입주자가 지불한 선납금으로 충당했다. 한강맨션아파트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럿 붙어 있는데,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최초의 아파트 또한 이곳이다. 분양이 끝났음에도 분양권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더니 입주 시점에는 분양가의 10~15%에 해당하는 프리미엄이 더해진 금액으로 거래되었다. 아파트는 욕망을 투영하는 재화가 되었고 경쟁적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다. 주거 공간은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건축물이라는 대전제는 처음부터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50여 년 전 정부가 그릇된 판단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 우리는 아파트를 향한 뒤틀린 열망에 잠식된 채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경제적 풍요의 증표가 된 아파트 대한주택공사는 뒤이어 건설한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반포 주공아파트 1단지에도 고급화 전략을 적용했다. 전자는 국내 최초의 단지형 고층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후자는 99동 3700여 가구에 이르는 국내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다. 이 중 60개 가구는 30평 면적의 2개 층을 사용하는 복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큰 규모가 곧 풍요로움이라고 착각하기 쉬웠던 시대의 산물이다. 국민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재화의 축적은 ‘잘살아 보세’를 부르짖는 사회에서 추구해야 마땅한 최우선 목표였다. 그 목표를 이뤘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가 아파트였다. 고급 주택을 의미하는 ‘맨션’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아파트에서 산다는 말만으로도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1980년대 서울에 새로 조성된 신시가지와 1990년대 수도권에 마련된 1기 신도시는 모두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채워졌다. 늘어나는 인구와 높아지는 주택 가격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어느덧 사람들 눈에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이후 아파트 주변에 있던 시설들이 하나둘 아파트 단지 안으로 위치를 옮기는 변화가 일어났다. 상가는 물론이고 놀이터와 수영장, 심지어 교회와 학교까지도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서게 되었다.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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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2월 20일
In 도시공상
인덕원역 주변에는 큰길가의 인도를 제외하고는 보행자 전용도로가 단 한 곳도 없다. 수많은 불법 주차 차량이 보차혼용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편안한 길에서 동네를 산책하는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이 지역 보행 환경의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만연한 불법주차 인덕원역 주변의 도로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가득하다. 도로 위에 주차 구획이 제법 많지만 이 많은 차량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든 골목이 예외 없이 차량들로 빼곡하다. 2 보행자 도로의 부재 보행자 전용도로가 쾌적할수록 상권이 살아난다. 인덕원역 주변 개발 담당자들은 이러한 사실은 아랑곳없이 기존의 보도블록을 걷어 내고 아스팔트로 길을 포장하기 바쁘다. 또한 보도와 차도 간의 높이 차를 없애 차량 진입이 쉬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3 부족한 횡단보도 인덕원역 블록을 둘러싼 대로를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는 흥안대로와 관악대로에 각각 하나뿐이다. 특히 관악대로의 횡단보도는 차도의 교차점이라는 비상식적인 위치에 있다. 인덕원역 주변의 보행자들은 겹겹이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반대편 코너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인지할 수 없다. 취객들이 비틀거리며 도로를 걸으면 차들이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클랙슨을 울려 댄다.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안건은 불법 주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주차된 차량의 소유자는 대부분 인근의 상업시설 이용객, 상가 임차인, 지역 원주민, 그리고 학의천 건너편 산업단지 근무자들이다. 신 도심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왜 이곳에 차를 세울까?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덕원역 주변의 주차비가 더 저렴하고, 주차비가 없는 곳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 도심에 비해 구 도심의 주정차 단속이 느슨하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탓에 인덕원역 근방의 주민들은 열악한 보행 환경이 주는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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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21일
In 도시공상
수백 수천 세대가 모여 사는 요즘의 아파트 단지에는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높다란 소나무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부담스러운 형태의 파고라(pergola)*는 용도를 알 수 없고 울타리로 둘러싸인 잔디밭 앞에는 들어가선 안 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집값을 높이기 위한 관상용 조경은 그저 화려할 뿐, 어디에도 사람을 위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구 도심의 풍경은 다르다. 빨강색 ‘고무 다라이’에 흙을 채워 상추를 심고 고추를 기르는 모습을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조경 전문가의 작품처럼 세련되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이 녹아 있는 텃밭은 정겹고정성스럽다. 콘크리트 덩어리들 속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자연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골목 곳곳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이 지역의 텃밭은 고령 인구가 많은 곳에 집중되어 있다. 어쩌면 식물을 기르는 것은 기다림에 익숙한 나이 든 자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들이 일구어 낸 녹색 풍경은 자동차와 콘크리트 구조물에게 뛰어놀 곳을 빼앗긴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공동 주거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 가꾸는 텃밭은 공동체 활동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에서는 2013년부터 학교 건물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여 지역 주민,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돌보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참여자의 커뮤니티 만족도가 높았는데, 연례 행사를 치르는 가운데 공동체 의식이 함양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인덕원역 주변의 도시 텃밭 또한 마을 커뮤니티 활동의 든든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 02. 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도시 텃밭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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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7일
In 도시공상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 인덕원역 주변의 보행자들은 겹겹이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반대편 코너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인지할 수 없다. 취객들이 비틀거리며 도로를 걸으면 차들이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클랙슨을 울려 댄다.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안건은 불법 주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주차된 차량의 소유자는 대부분 인근의 상업시설 이용객, 상가 임차인, 지역 원주민, 그리고 학의천 건너편 산업단지 근무자들이다. 신 도심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왜 이곳에 차를 세울까?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덕원역 주변의 주차비가 더 저렴하고, 주차비가 없는 곳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 도심에 비해 구 도심의 주정차 단속이 느슨하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탓에 인덕원역 근방의 주민들은 열악한 보행 환경이 주는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넓은 도로는 자동차만을 위한 공간이다. 흥안대로는 인덕원사거리와 금정고가차도 사이를 잇는 너른 길이다. 차도 너비는 거의 60m에 이르지만 인도의 너비는 그에 비해 굉장히 좁은 7m이다. 그 위에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입구, 구두 수선집, 각종 기반 시설 설치물, 자전거 도로 등이 모두 자리하고 있는 데다 상점 광고물까지 더해져 매우 혼잡하다. 결국 온전히 보행에 이용되는 너비는 겨우 2m 남짓이다. 오히려 중앙 조경 분리대의 폭이 보행 도로의 폭보다 더 넓다. 우리는 여유로운 보행공간을 공상한다. 쾌적한 보행 환경을 확보하려는 것은 단지 미관상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의 사례를 보면 여유로운 보행 공간은 생명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첫 단추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흥안대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순수 보행로의 폭을 6m 이상 확보해야 한다. 녹지 공간은 보행로와 차도 사이에 설치하고 휴게 시설을 포함하도록 한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휴식 및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자전거 도로는 보행로 바깥쪽에 두고 차로와 안전하게 구분하도록 한다. 대중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위하여 버스 중앙 차로와 교통섬을 만들어 정류장을 옮긴다. 2022.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도시 속 보행에 대하여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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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16일
In 도시공상
인덕원은 조선 시대에 내시들이 살던 곳이었다. 궁중을 출입하며 높은 관직을 역임한 이들이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덕화(德化)를 많이 베푸는 사람이 사는 곳'이란 의미로 인덕(仁德)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러다 과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상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한 원(院)을 설치하면서 인덕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원(院)은 임진왜란 이전에 없어졌다. 말을 갈아타던 곳이라 말 무덤 또는 말 분료를 뜻하는 마분(현 관양1동)이 인접해 있고 과거 초롱불을 밝힐 때 사용하던 기름이 나는 쉬나무가 유독 인덕원 인근 관악산 자락에 많이 식생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인덕원은 과천에서 진입하는 안양의 첫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인덕원 안에는 여전히 70년대에 처음 건설된 단독주택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주거시설이 상업시설과 공존하고 있다. 최근 재개발이 해제된 이후 소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학의천 건너 공장지대가 스마트밸리로 조성되며 이곳을 지나 출·퇴근 하는 직장인이 많이 생겼다. 인덕원이 원(院)이었을 때의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70년대부터 하나 둘 생성되기 시작한 인덕원의 역사는 아직도 선명하게 도시의 일부로 남아있다. *이승언,<안양시 지명유래집> (1996) <1960년대 인덕원과 평촌 주변: 도시화 되기 전의 학의천은 말 그대로 구비구비 흘렀다> 인덕원은 비정상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너비가 74m, 55m에 이르는 대로가 인덕원역 주변 블록의 절반 가량을 감싸고 있다. 이들 대로를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는 단지 두 개뿐이다. 다른 쪽 절반은 학의천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건너편에는 수많은 공장과 산업시설이 늘어서 있다. 근로자들이 빠져나간 저녁 이후나 휴일인 주말에는 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인덕원역 주변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비인간적인 규모의 커다란 시설들이 이토록 작은 블록을 에워싸고 있으니,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인덕원역 부근은 지하철이나 버스, 자가용을 이용해 다양한 방면으로 이동하기에 매우 편리한 지역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도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도보생활권’이 좁은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에 의존할 필요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이웃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자주 만나는 가운데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인덕원역 주변의 거대 시설이 축소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다.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2022.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인덕원역 주변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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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15일
In 도시공상
도시가 보행성(walk-ability)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차를 타는 대신 두 발로 도시를 거닐면 더 많은 만남의 기회를 갖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호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이를 표현하는 적절한 구절이 있다. "이 도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 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등의 높이와 그 가로등에 목매달아 죽은 찬탈자의 대롱거리는 다리에서 땅까지의 거리 사이의 관계, 그 가로등에서 앞쪽 난간으로 묶어놓은 줄과 여왕의 결혼식 행렬을 장식했던 꽃 줄 사이의 관계... (중략) ... 창문 홈통의 기울기와 바로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당당한 걸음걸이 사이의 관계... (중략)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에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 도시가 보행성을 확보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상권의 활성화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상인들이 차량의 접근이 쉬워야 장사가 잘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도시가 보행 환경이 쾌적할 때 상권이 살아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주민과 상점 사이뿐 아니라 주민과 상인 사이도 이어 준다. 커뮤니티가 회복되면 지역의 경제도 회복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공간의 효율적 이용이다. 차량은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 때문에 한정된 도심지의 공간은 도로를 메운 차량으로 낭비되고 있다. 자가용이 많아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간 면에서도 낭비가 적지 않다. 우리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편해서가 아니라, 자동차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직접 운전하여 이동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의 건강 유지를 위해 보행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 움직이지 않고 건강해질 방도는 없다. 도시의 건물과 이동 수단은 적극적인 신체 활동을 막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어 있지만, 거리가 보행성을 되찾는다면 주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개인의 신체적 건강 증진은 정신적 건강 증진으로, 또한 사회적 건강 증진으로 이어진다. 걷기 좋은 거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덧붙여 우리 도시는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이동 가능한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단 차를 없애고 길을 넓히고 경사를 낮춤으로써 도시 내에서 보행권을 확보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민주적인 도시 공간을 지향하는 보행환경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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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14일
In 도시공상
우리나라에서 공공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박하기 짝이 없다. 건축물과 도로를 설치하고 남은 부산물 처리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도시 계획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공공 공간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나라 공공 공간의 질은 대체로 낮다. 접근하기 어려운 변두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유지 및 관리가 쉬운 형태로 디자인하기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실용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안양역 주변을 생각하면 이러한 분석조차 사치다. 공간의 질을 따질 형편이 못 된다. 공간 자체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공공 공간은 커녕 임시로 설치된 시외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 발 디딜 틈 없는 공영 주차장과 수많은 차량들로 빼곡한 로터리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꼽아 보자면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는 도서관 한 곳,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공원, 조그만 놀이터 몇 곳이 전부다. 도시를 대표하는 역 주변에 공공 공간이 없다면 도시의 경쟁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 경쟁력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는 생동감이 넘치고 활력이 충만하다. 지방자치시대에 들어 많은 도시들이 한두 개의 테마를 두고 발전을 꾀하지만, 단순한 콘셉트의 도시 계획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공장이 떠난 공업 도시와 트렌드에 뒤처진 관광 도시가 겪는 어려움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지역 공동체는 다양성 있는 도시의 바탕을 이룬다. 개개인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교류되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이 만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도시 개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지점은 바로 공공 공간이다. 일상의 다양한 모습이 스며들어 풍성하게 꽃피는 공공 공간이야말로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띄지 않는 변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도시 중심부가 공공 공간의 위치로 더욱 적절하다. 안양역 앞은 시민들의 것이어야 한다. 이 장소는 수암천과 더불어 구 도심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이 편안해지고 발걸음이 느긋해질 때, 안양의 구 도심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안양시에서는 수암천 공영 주차장을 복원하고 인근 삼각형 부지를 매입하여 지상에 공원, 지하에 주차장과 유수지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토지 배상 문제에 부딪혀 진척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들로 가득 찬 안양역 주변에 과감한 제안을 던진다. 첫째, 안양역 주변의 교통 체계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 안양1번가와 접한 만안로를 안양역 방향의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좁은 인도를 확장한다. 일방통행로는 안양역을 관통하는 대신 중앙사거리 방향으로 흐르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안양역 앞 교통 로터리를 시민에게 열려 있는 광장으로 조성한다. 이 광장은 시각적, 물리적으로 수암천 수변공원과 연결된다. 안양역 플랫폼에서 나와 광장을 나서면 인근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둘째, 새롭게 조성된 안양역 앞 광장에 지상과 지하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선큰(sunken) 마당을 마련한다. 안양역 지하상가는 안양1번가만큼이나 활성화되어 있다. 역 앞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못하고 지하상가를 통해 건너편으로 이동하게 된 데에는 지하상가와 안양1번가라는 두 상권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두 상권 모두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매력 있는 장소인 만큼, 공생을 위한 대안으로 마당을 제안하는 것이다. 지하상가는 날씨에 제악을 덜 받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자연 채광이 들어오지 않고 환기가 어려우며 시민들이 쉴 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 또한 비상 시 대피가 어렵다. 이런 문제점들은 지상과 지하를 시원하게 연결하는 여유 있는 선큰 마당으로 해결할 수 있다. 셋째, (구) 현대코아를 복합 문화 시설로 탈바꿈한다. 20년이 넘도록 도시 미관을 훼손하며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건물을 시민들을 위해 새롭게 단장해야 한다. 특정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 아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일명 ‘안양 뮤지엄 파크(Anyang Museum Park)이다. 지하 8층, 지상 12층의 건물은 지하에서 지하상가 및 선큰 마당과 연결되고, 1층에서는 안양역 앞 광장, 2층에서는 안양역 플랫폼과 만난다. 도서관, 전시관, 도시농장, 수직 정원, 전망대와 같은 다양한 시설이 있고 언제나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이 시설을 중심으로 안양은 공공예술의 도시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공공 공간이다. 변화된 안양역 부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진다. 사유재산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모두 함께 살기 위해서는 큰 변화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 아직은 요원해 보이는 우리의 공상이 지역 주민들의 호응을 받아 현실화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20.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모두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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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12일
In 도시공상
옛사람들은 주거지를 고를 때 가까이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있어 하천은 삶의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하천은 제어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의 ‘하천법’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도 하천은 각각 관리의 대상과 방재 시설일 뿐이다. 하천을 기능적인 면에서만 바라본 결과 전국이 콘크리트 수로로 도배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직강화 뒤에 하천 위를 덮어 주차장으로 이용한 사례도 허다하다. <안양시 수암천을 직강화하여 복개주차장으로 사용했던 모습> <복원된 수암천: 대부분의 도심지 하천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려쌓여 도시와 연결되지 않고 있다> 물은 단순한 자원 이상이다. 하천은 생활 터전의 일부다. 도시 공간과 수변 공간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 현대의 도시 계획은 워터프론트(waterfront)*를 디자인하고 자연 하천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수변 공간이 훌륭한 휴식 공간이라는 점을 주목하는 도시가 늘어나는 추세다. 흐르는 물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청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촉각적으로 친숙함을 선사한다.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은 그리하여 물가로 모인다. 안양의 수암천 대부분의 구간이 복원된 후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우리는 이 하천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못했다.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주민들이 수암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수암천을 둘러싼 풍경은 더 유려해져야 한다. 하천이 주는 혜택이 더 많은 주민들에게 돌아갈 미래를 공상해 본다. <복원된 독일의 이자르강> 이자르강은 독일 뮌헨을 통과해 도나우강으로 유입되는 총 길이 289km의 하천이다. 20세기 초에 홍수를 막고자 인공 제방을 쌓아 직선 수로를 조성하였는데, 홍수 피해는 더욱 심각해졌고 수질마저 떨어졌다. 복원 노력은 1989년부터 시작되었다. 8km 구간을 우선 복원하기 위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조사단을 꾸려 10년간 철저히 조사를 진행했고, 이후 10년에 걸쳐 3단계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원래의 모습대로 굽이굽이 돌아 흐르게 된 강은 홍수를 더 잘 막아 냈다. 수질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시행했던 토목 사업은 효과적인 해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하천 개발의 가장 좋은 방향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도심지 하천을 복원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천 주변의 사유지를 수용하는 과정이다. 유럽 국가들도 이런 개인 재산을 매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걸린다. 지자체장의 임기 기간과 묘하게 맞물려 있는 대한민국의 천 복원 기간은 너무 짧다. 아마도 제대로 된 자연 환경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성격 보다는 치적 사업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천을 복원하는 것은 도시의 맥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밀하고 정교한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삼덕공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부 수암천 복원 구간: 모범적인 도심지 하천 복원 구간으로 뽑힌다> 2020.02.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도시의 직강화 사업과 복원된 하천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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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라운드 아키텍츠
2022년 11월 10일
In 도시공상
안양역 앞에는 사람을 담을 공간이 없다 1905년에 안양역이 개통되면서, 안양시에는 처음으로 발달된 교통 체계가 들어섰다. 운반과 수송이 원활하다는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안양시 상업 경제 규모의 약 70%가 안양역과 그 주변에 집중되었다. 안양시는 이곳의 발전을 원동력으로 삼아 수십 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양역 부근은 안양시 역사의 가장 중요한 축(axis)으로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이다. 이 장소는 오랜 시간에 걸쳐 피워 온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곳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쌓여 나가야 할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에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장터를 열 수 있어야 하고 공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안양역 앞에는 그러한 공간이 없다. 사람 대신 자동차가 빼곡하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풍경인가!" 안양역을 빠져나와 길을 찾던 이들은 순간 어리둥절해진다. 맞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횡단보도가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의 풍경도 당혹스럽다. 로터리를 끼고 분주히 달리는 자동차들 너머로 시외버스 정류장의 혼잡함이 겹쳐진다. 그 옆으로는 공영주차장에 빼곡히 주차된 차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공사가 중단된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하고도 흉물스러운 건물은 이 모든 혼란스러움의 정점이다. 이 모습이 전철과 지하철을 타고 안양시를 찾아온 사람들이 보게 되는 첫 광경이다. 여행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편안한 쉼터라고는 한 뼘만큼도 없다. 돈을 내야 앉을 수 있는 상가들만이 유일한 휴식처다. 2020. 2. 28 비그라운드아키텍츠
오늘의 안양역 앞 풍경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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